22.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본 구원론 이해(눅16:19-31)
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보면, 사회적 공감을 이룬 부분은 대개 설명을 생략합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거나 정서적인 일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왜 낙원(천국)에 갔는가?
* 무슨 선한 일을 했지?
* 무엇을 믿은 것일까?
왜 부자는 지옥에 갔는가?
*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했는가?
* 믿음이 없어서인가?
* 왜 부자는 자신이 지옥에 갔는지 항변하지 않을까?
* 오히려 쉽게 수긍하고, 아직 살아있는 다섯 형제만큼은 지옥에 오지 말라고
아브라함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부자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부자가 허랑방탕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5-16장은 경건한 바리새인들의 허상을 보여주는 비유이기에 부자 역시 바리새인처럼 종교적 열심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성령을 따라 온전한 희생적 삶을 살지 않은 자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문자적 율법준수에는 열심이지만 정령 성령이 인도하시는 그러한 삶은 거부한 부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부자가 "율법을 따라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율법은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서 들을지니라(눅16:29)
-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눅16:31)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요7:19)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이해하지 못한 자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자손들입니다.
언약의 자손들은 그들에게 임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킬 힘 즉 성령을 또한 주셨습니다.
-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2:5)
<아마, 학개 선지자는 출20:1-23:19절까지의 율법과, 23:20-33절의 성령을 주심을 온전히
이해한 듯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성도들도 성령의 역사를 따라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할 특권과 의무가 있습니다.
-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율법과 성령을 같이 보아야만,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합니다.
구약성도들의 구원이나 신약 성도들의 구원이나, 모든 기준은 <성령을 따라 살았느냐>입니다.
성령을 따라 산 자는 성령의 열매를, 육의 소욕을 따라 산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들을 거둡니다(갈6:8).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본 구원론 이해의 핵심은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율법의 근원을 보고 지키는 것>입니다.
결국 이웃을 내 몸같이, 하나님을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힘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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