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도에 접어들면서 실제적으로 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는 은사를 주목하면
단연코 <방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내에서 종교적인 특징으로 가장 흔하면서 어느 때든지 접할 수 있는 것이 방언입니다.
그래서 방언 역사를 찾아보니 실질적인 나타남은 흔하지 않습니다.
주후 175년경 초대교회 몬타누스 운동으로 일어난 것이 가장 최초이자 급격하게 사라졌습니다.
당대에 몬타누스 운동은 대단한 충격을 주었기에 예방차원에서 큰 변화를 겪습니다.
역사적전천년 견해에서 무천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또한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이 일어나게 보입니다.
칼빈이 살았던 주후 16세기에는 방언에 대한 논쟁조차 없습니다.
칼빈은 방언에 대해 <외국어>로 규정합니다.
또한 그런 은사가 종결되었다고 봅니다.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 22 장에 나온 그의 견해입니다.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예배
그러므로 예배를 위한 집회에서 우리는 '이상한 방언들'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예배시의 모든 일은 이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수행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방언기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란 것입니다.
이런 칼빈의 주장에 대해 그 당시에는 아무런 논쟁조차 없습니다.
당대에 방언 기도가 논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교회에 방언논쟁이 뜨겁습니다.
그 중심에 노우호 목사님과 여러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가세하면서
방언 논란으로 인하여 교회는 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