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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수준

오은환 2019. 7. 31. 17:38

누군가를 가르칠 때 목표치를 어느 정도로 잡을지 고민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을 양육할 때 역시 그런 고민을 합니다.

바울은 어느 정도로 선을 정했을까요?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롬15:14)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안에 선함이 가득한 자들입니다. 

이전에 악함이 자리를 잡았다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함이 넘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모든 지식이 가득찼습니다. 

저절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배우고 익힘으로 그렇게 됩니다. 


이런 측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선함과 지식이 가득하지 못하면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대충대충 가르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바울의 가르침의 목표치는 항상 동일합니다. 


*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바울은 성도들이 적당히 알고 적당히 행하도록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서 온전한 성도가 되도록 가르쳤습니다.

*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 All)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행20:27)


오늘날 교회가 성도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목표치가 어떻습니까?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루터와 칼빈이 청중들과 어린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했습니까?

너무도 수준낮은 당대의 성경교육을 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이 종교개혁시대의 교육수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 때를 넘어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