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칼빈은 위 구절에서 회개하는 것과 믿음(신앙)의 순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처럼 믿음이 회개에 선행한다는 다소 딱딱하고, 본문에 넣었을 때 어색한 사상을 집어 넣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본다면 당연한 순서입니다. 믿음이 없는 회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복음서를 이해하는 큰 틀을 어떻게 세울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는 이신칭의라는 틀 안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열매로 판단하겠다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힘든 결정을 했습니다. 칼빈 역시 복음서 해석에 많은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첫째로, 당시의 청중들이 구속을 받았는지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