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하나님께 떼를 쓰는 장면은 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시내산에 강림하셨던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달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떠나지 말고 이스라엘과 동행하기를 메달리며 요청합니다.
*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33:15)
40 일간 모세가 시내산에 머물렀을 때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다 멸망시킬 수 있기에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 ...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출33:3)
그러나 모세의 설득에 하나님은 다소 양보한 듯 보입니다.
모세는 자기 혼자서는 절대로 이스라엘을 끌고 가지 못한다고 버팁니다(출33:12).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33:14)
긴 시간이 흐른 후 이 광경을 보는 우리는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떻게 세우셨을까요?
1. 시내산에 강림하여 언약을 맺음
여호와(성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기 위해 하늘 보좌에서 시내산 위로 강림하셨습니다(출19:16-19).
언약을 맺으신 후 어떻게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지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보호하며, 인도하신다고 알려주십니다.
*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출23:20)
2. 여호와의 사자를 통한 통치 시작
성부께서 직접 하늘 보좌를 떠나서 이스라엘 진영과 나라에 오셔서 다스린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형태의 통치는 주의 재림과 더불어 시작됩니다(계11:15).
그럼 하나님께서 보내신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일까요?
왜 그를 통하여 통치하시겠다는 것일까요?
어떻게 그의 목소리를 이스라엘이 청종(들음)할 수 있을까요?
*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출23:21)
3. 언약을 통한 연합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식은 오늘날의 결혼식과 같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한 몸 됨을 약속한 결혼식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둘은 이제 한 집에서 한 몸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약백성과 하나님이 이제 한 몸되어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안에 거해야만 한 몸이며 언약백성입니다.
예수님도 새 언약을 맺음으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구약의 옛 언약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반복해서 여호와의 사자와 연합을 강조합니다(출23:22).
여호와의 사자가 누구였는지 이스라엘은 너무도 잘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진술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사야 선지자는 밝히 드러냅니다. 바로 성령님입니다.
구약에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아버지의 성령 혹은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사63:9-14)
구약백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통치하였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는 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제사장이나 선지자 혹은 사사, 왕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간접적으로 통치했다는 신학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왕 되심을 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시편의 엄청난 감동을 희석시켰고, 구약을 희미한 책으로 만든 실수를 범했습니다.
*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시146:10)
모세의 애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고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연합만이 하나님의 직접 통치이자 영원한 소망이며 생명이 되며,
모든 성도들에게 참 쉼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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