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89년 신학지남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그 해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 미국 서남침례교 신학대학에서 있었던
"신도들의 교회 협의"에서 다루었던 주제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홍치모 교수 역시 이런 주제에 영감을 받아 이 논문을 썼습니다.
이 논문의 전반부는 재세례파의 기원에 대해 다루었고 후반부는 그 운동을 일으켰던
중심적인 인물들을 다루었습니다.
분량이 작아서 저자의 큰 그림만 살펴봅니다.
재세례파 운동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양상이 복잡하고 다양해서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통일성을 찾기가 어렵고 극도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운동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일체의 간섭을 받지 않은 자유로운 단체를 형성하는 것,
일체의 세속적 제도에 대한 거부적인 태도를 간직하면서 심령주의를 추구하는 것,
합리주의적인 교리비판, 철저한 평등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문자주의적 성서주의, 천년왕국적 유토피아주의, 기독교적 공산주의 등이다.
그러므로 R.H Bainton 교수는 '종교개혁의 좌익'이라고 불렀고, 윌리엄 교수는 '급진적 종교개혁'이라
불렀다. 그런데 1950년 이후 동부 독일의 역사가들은 '민중적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p.128-129)
재세례파가 스위스와 독일에서 동시에 발생하였는데 루터와는 다르게 급진개혁주의자들로 활동
하였고, 스위스 역시 쯔빙글리와 함께 하면서 독립하였던 무리들입니다.
이들의 공동점은 루터나 쯔빙글리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것이란 점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생각과 다름을 드러내며 결별하게 됩니다.
1525년 1월 재세례를 받음으로 그들 스스로가 하나의 섹트(sect)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표방했던 주장들입니다.
"1. 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으로서 예수의 산상보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며 그리스도를
본 받으려는 이념
2. 철저한 회개와 재생을 통한 소수의 자발적인 결사(結社)
3. 무저항적 절대 평화주의
4. 유아 세례의 반대
5. 교회와 국가와의 분리(관직취임, 병역과 전쟁의 거부)
6. 맹세의 거부
이 6 개 항목 중에서 유아세례의 거부는 반대파에 의해서 재세례파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p.133)
이 논문을 통해 재세례파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졌으면 합니다.
최근 한국에도 이런 종류의 신학을 가진 자들과 교회들이 등장했습니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일치하는 교회들입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변증적 성격이 강하지만 실제 깊은 진리의 근저는
재세례파와의 논박에서 나옵니다.
성례나 유아세례 부분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다루며, 이것은 재세례파의 진리적 결함을
바로 잡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핵심중의 핵심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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