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신학지남 2018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신학지남 제 85권 1집, 통권 제 334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고하는 조직신학 김광열 교수님의 글입니다.
목차
서론 : 개혁신학 성찬론의 회복을 위하여
Ⅰ. 성찬 혹은 주의 만찬(Load's Supper)이란 무엇인가?
Ⅱ.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 : 영적, 실제적(real) 임재
Ⅲ. 성찬의 의미
Ⅳ.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찬
Ⅴ. 결론과 제안
서론 : 개혁신학 성찬론의 회복을 위하여
한국교회 성찬론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정도로 시행되고 있다.
성찬에서 제공되는 떡과 포도주는 무의미한 표가 아니라, 실체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표와 상징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실제적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칼빈의 가르침을 따라, 개혁신학의 구원이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주어지는 영적축복
이라는 관점을 고려해볼 때 성찬에서의 실체되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먹는 의미는 단순한
기념 정도의 의미를 넘어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 강요와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의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해보자.
Ⅰ. 성찬 혹은 주의 만찬이란 무엇인가?
1) 성찬을 통해 자신의 살과 피를 쏟은 죽음을 기억하고, 그 죽음과 부활을 통해 승귀하신 주님과
연합과 교제를 누리며, 영적 성장을 위한 양식을 공급 받는다. 또한 거룩한 교제로 부르심을 받은
다른 신자들과의 연합을 향유하게 되는 예식이다.
2) 구속의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성찬의 이미지들 - 성찬의 역사성(빨강색 글씨는 개인적인 의견)
성찬의 기원을 에덴동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또한 구약 옛 언약의 행정 안에서 몇 가지 사건들을
거쳐 신약의 새 언약의 행정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찬에 이르게 된다.
또 마지막으로 주어질 종말론적 축제의 만찬으로 향하고 있다.
※ 에덴동산 - 구약 - 새 언약 - 종말론적 축제(매우 적절하고 깊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a) 에덴동산에서
동산의 풍성한 열매들을 먹으며 하나님과 교제를 향유하게 하셨다.
b) 구약의 옛 언약 속에서
범죄한 후에도 식탁의 교제를 허락하셨다. 농작물의 십일조 규례 중에서,
*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신14:23-26)
십계명이 주어진 후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
*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출24:9-11)
c) 새 언약 아래서 주어진 주의 만찬
옛 언약에서의 식탁의 교제는 아직까지도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교제
이지만(?)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사를 통해서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누리게 되는새 언약의 주의 만찬의
교제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식탁의 교제가 될 수 있었다.
d)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의 만찬
계시록 19장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범죄하기 전의 교제를 넘어선다.
신랑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종말론적 축제의 식탁에서 만나 교제하며,하나로
연합되는 기쁨의 식탁을 예고해준다.
Ⅱ.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 : 영적, 실제적 임재
그리스도의 임재는 성령의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주어지는 영적, 실제적 참된 임재임을 강조한
점에서 우리는 칼빈의 성찬론의 특징을 말할 수 있다.
a) 로마카톨릭의 화체설의 문제점
성체성사로 부르는 성찬 미사에서 떡과 포도주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고 본다.
사제가 축사를 드리는 순간부터 그러한 본질상의 변화가 주어지며, 따라서 미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지고 피가 흘려지는 희생제사가 반복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성례에 참여하는 신자의 믿음과는 별도로, 그 예식의 자체적 가치에 의해서 은혜의 효능이
자동적으로 주어진다고 보는 것이다(사제주의). 카톨릭의 이해는 예식 참여자의 중요성이나, 성령의
역사 없이 그 효능을 확보하려는 '마술적 성찬 이해'라고평가될 수 있다 - 개혁주의의 '오직 믿음'과
충돌된다.
카톨릭의 관점이 지니고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화체설의 관점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거부하게 한다는 점이다.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속죄 제사가 드려진 후에도 또 다시
희생제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라는 화체설의 관점은 인류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이미 끝나고
완성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b) 루터파의 공제설의 문제점
루터는 화체설과 같이 떡이나 포도주의 본질이 주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물질적 몸과 피'가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아래에 (in, with, under)" 임재한다고 본 것이다.
소위 공재설이라 불리우는 가르침이다.
공재설에 기초가 되는 개념이 루터파의 '신적 속성 교류' 이해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과
연합함으로 인성이 신성의 편재성에 참여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위격이 머무는
곳에 그의 신성, 영혼, 신체가 모두 함께 존재한다는 이해에 기초해서 공재설의 근거를 마련한다.
요약하면, 루터파는 공재설의 관점에서 신자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입으로 받는다는
'육적 먹음'을 가르쳤고, 칼빈은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믿음으로
받는다는 '영적 먹음'을 가르친 것이다.
c) 쯔빙글리의 기념설에 대하여
쯔빙글리는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임재에 대해서는 수용했지만,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해서는
분명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성찬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기념적인 예식일 뿐
이었다.
칼빈이 본 쯔빙글리의 성찬은 단순히 인간이 기념하는 차원에서의 사건으로만 간주하는 공허한 예식에
머물게 된 것으로 보고, 성령의 비밀한 역사를 간과한 것으로 보았다.
Ⅲ. 성찬의 의미
개혁신학이 가르치는 성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① 우선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예식이다.
② 성찬을 통해 구속사역을 성취하시고 승귀하신 현재적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확인한다.
③ 그 분이 이루신 구원의 영적 축복들과 은총들을 받아 누리며, 영적 성장을 이뤄가는 구원론적 의미도
내포된다.
④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도 향유하게 된다.
성찬은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원론적 중요성을 지닌 예식이 된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엡1:3).
예정의 은총으로부터 거듭남(중생), 회개나 믿음, 칭의, 양자, 성화 등과 같은 영적 축복들은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누리게 되는 영적 축복들이고, 성찬은 그 연합의 축복들을 확인시켜주는
예식이기 때문이다.
Ⅳ. 성찬의 의미
은혜의 수단들로서 말씀과 성례 그리고 기도가 있다.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 포함되어 있다.
세례는 신자의 생애 중 단 한 번만 시행되지만 성찬은 일생동안 자주 시행된다.
세례는 유아에게도 시행될 수 있지만 성찬은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행된다.
어거스틴이나 칼빈에게 있어서 성찬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은 '믿음'이다.
불신자가 성찬에 참여해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은 그가 가진 믿음이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Ⅴ. 성찬의 의미
칼빈의 성찬 이해 - 영적, 실제적 임재설 - 는 부분적인 이해가 아니다.
칼빈이 이해한 성찬은 성경적 구원론의 기초 위에서 일관되게 바라본 구원론적 가르침의 한 표현이라고
해야 한다.
<로버트 레담> 교수는 이렇게 정의한다.
"칼빈의 성만찬 교리는 그의 전반적인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칼빈의 성찬론은 그의 신학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레담 교수가 지적하는 칼빈의 신학이란 특히 그의 구원론을 가리키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주어진 구원이기 때문이다.
칼빈과 화체설, 공재설, 기념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성례란 구원론적 현재성을 지닌 중요한 의식이라는 것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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