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천년 = 어린양의 혼인잔치 기간

오은환 2023. 10. 4. 12:14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천년왕국이란 긴 시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1. 천년은 긴 시간인가? 짧은 시간인가?

인류 초기 인간의 수명은 천년입니다. 

청년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던 것을 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으로 

하여금 천년의 삶을 유지하게 하신 듯합니다. 

 

요즘 결혼예식이 30분 정도면 끝이 나기에 천년동안 혼인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가볍게 상징으로 취급하려 합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시간은 늘거나 줄거나 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무저갱에 갇히고, 악인들은 풀무 불에 던져진 상태로 천년동안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립니다. 혼인잔치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성경에 근거한 추측이 가능한데,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숫자가 얼마인가에 따라서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

 

예수님은 자신이 이긴 자로서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보좌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추측하건대 성도 한 사람씩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을 때는 혼인잔치 기간으로 보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신부를 소개하며 칭찬할 때 자신의 보좌에 앉게 할 것입니다.

어린양의 아내가 되었음을 축하하며 선언함과 함께 귀한 면류관들을 주실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재림직전까지 구원받은 수가 얼마나 될까요?

수십억이 된다면 그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천년에 가까울 것입니다.

 

2. 신부가 소개될 때 영광을 함께 누릴 자들은 누구인가?

한 사람의 성도가 구원이란 열매를 맺을 때 여러 성도들의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교회의 목회자(사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도들의 보이지 않은 수고가 뒤따릅니다. 

또 각각 읽었던 좋은 신앙서적들은 성도들이 자라는 양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구원받았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나무가 자라는데 나무를 심는 자와 물을 주는 자들의 수고처럼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신부가 아름다운 면류관을 받을 때 그들을 도왔던 자들 역시 함께 기뻐합니다. 

혼인잔치의 기간이 길어야 할 이유입니다.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4:1)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자리에서 우리들은 놀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성도들이 각각의 면류관들을 받을 때, 저런 종류의

면류관도 있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기쁨이 될 수도 있고, 탄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던 자들도 재림 이후에는 매우 부요한 자가 

될 것입니다. 재림 이후에는 더 이상의 면류관을 받지 못하기에 우리가 사는 지상의 삶은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본질을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데 천국의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가 됩니다(마5:3).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부요한 자니라(계2:9)

 

예수님 때문에 스스로 혹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난한 자가 되었던 자들은 가장 부요한

자가 됩니다. 선교사, 목회자, 복음 전도자, 선지자, 길거리 전도자 등 이름 없이 섬겼던 자들은

상상도 못 할 상급을 받을 것이며, 수많은 성도들이 와서 구원과 자라는 데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고마움을 받을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며, 또 큰 기쁨의 잔치가 된다는 사실을 보면서 

지상에서의 삶의 가치를 재발견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