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해석하면 두 가지 서로 다른 구원론을 다루게 됩니다.
옛적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두 갈래의 길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언약 자손은 어떤 죄가 있어도 구원은 받는다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관점입니다.
시편 77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성가대장 아삽이 직접 지은 시인지 아니면 편집한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아삽의 시라고 이름 하지만 히스기야 시대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아삽은 다윗과 같은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아삽이란 인물이 이런 시련을 당했는지, 혹은 이스라엘 전체를 묘사하는지,
누군가의 시를 편집한 것인지 우리 시대에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시77:3)
*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 시77:7-9
어떤 혹독한 죄를 범했기에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까요?
밤을 지새우며 손을 거두지 못하고 기도해야 할까요?(시77:2)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일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위기에 처한 다윗의 시가 생각납니다.
*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1-12)
문제는 무엇일까요?
시편 기자의 이런 고백이 자신의 무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주로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해야 하는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구약 이스라엘을 버릴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결론적으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모두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견해는 다윗이나 아삽의 시의 고백이 실질적으로 성도가 버려질 수 있다는 관점으로
언약을 깨뜨린 후 회개하지 않으면 무효가 됨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말씀과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지 않으면
더 이상 언약 백성이 아니고 심판에 이른다는 견해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구원론 가운데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성경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후자가 맞습니다.
언약 안에 있고, 언약을 깨뜨리지 않을 때 구원은 유효합니다.
시편 77편은 구원의 즐거움 가운데 거하다가 어떤 죄악으로 인하여 그 안에 있는 성령이
침묵하고 계셨기에 쓰인 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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