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을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도 동일한 권세가 주어졌습니다만
현실은 이런 권세를 사용하기를 주저합니다.
온전하지 않은 선악에 대한 판단력으로 사람과 사물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 사용을 주저하게 합니다.
*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시82:1)
여기서 하나님은 복수 엘로힘으로, 신들은 모임은 단수 '엘'로 묘사됩니다.
개역개정의 번역이 다소 문제가 있게 보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엘로힘)이 하나님(엘, 단수)의 회(에다) 가운데에서 서시며,
재판장들(엘로힘) 가운데서 심판하십니다"
다소 의문을 쏟아내는 재판장들이란 단어를 엘로힘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어야 할 엘로힘이 재판장들에게 사용된 것일까요?
하지만 우상들을 묘사할 때 곧 지상의 신들마저도 엘로힘으로 표현된 것을 보면,
엘로힘이란 단어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재판관들의 왜곡된 판단과 고의적으로 악인들을 편들어 주는
모습들이 드러납니다.
재판관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모습입니다.
*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엘)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시82:6)
역시 이곳에도 재판관들을 신들(엘로힘)로 표현하며, 지존자(엘, 하나님)의 아들들로
묘사하여,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임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재판관들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가 입니다.
노아의 홍수를 야기했던 '하나님의 아들들'(창6:2)은 매우 광범위한 범위로 사용되었는데
문맥으로 볼 때 셈의 자손들의 혈통으로 보입니다.
시편 82편은 통치라는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이 하나님의 모델이 되지 못함을
책망합니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망각하면서
쾌락에 빠진 것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이 구절을 가지고 창세기 6장처럼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합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요10:34-36)
재판관들의 특징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라고 지정합니다.
다른 어떤 요소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두 가지 큰 특권으로 '말씀을 맡은 자'와 '할례'로 봅니다(롬3:1-2).
여기서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신(엘로힘)과 아들들이 동의어냐는 것입니다.
* 엘로힘 = 아들들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하나님의 속성을 간직해서 신(엘로힘)처럼 된다는
것일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문맥입니다.
결국 완전한 통치는 주 예수님이 오셔서 성도들과 함께 천년 동안 통치하는 것으로
향합니다(계20:6). 지금 성령 안에서 통치가 시행되지만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것은
재림 때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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