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것은, 율법은 모세가, 복음은 그리스도가 주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율법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전달자일 뿐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율법은 아버지가 주셨고, 율법 안에는 복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담아 율법을 주셨고, 아들은 그 율법(아버지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완전하게 하다는 동사는 '채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율법에 나타난 복음의 정점을 찍는다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하심과 율법의 마침이 된다는 의미는 비슷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1. 율법에 나타난 예표들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구약 율법의 중심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예표들로 가득합니다.
제사, 절기, 사랑 등은 결국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기능들을 담당합니다(골2:17).
그리스도가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심으로 예표의 반복적인 행동들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단 번에 드려진 그리스도의 몸의 제사를 통해 제사와 절기들을 완성
시켰습니다.
2. 율법에 나타난 사랑을 완성함
율법의 중심 내용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약 율법에 나타난 사랑을 몸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었고, 우리의 마음에 새긴 새 계명이 되었습니다.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1:10)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보여준 것이 율법입니다(신30:6).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드러냈고,
또한 우리로 최고의 사랑을 나누자고 제안합니다(요일3:16).
3. 복음과 율법은 상반되지 않는다.
루터의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자들은 여전히 구약을 율법으로, 신약을 복음으로 해석합니다.
신구약 사이의 단절을 추구합니다.
이런 관점은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구약을 복음으로 보지 못한 산물입니다.
칼빈처럼 율법은 복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바른 관점입니다.
복음이라는 아들이 와서 율법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뒤짚었다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아들이 온 것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기 위함(완성)입니다.
아버지는 또한 아들을 통해 자신이 했던 말씀들을 온전히 성취하길 원하십니다.
4. 옛 계명과 새 계명
사도 요한은 옛 계명과 새 계명을 하나의 뿌리로 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성질이 아니라
새 계명을 통해 옛 계명으로 주어진 사랑을 더 확실하게 인식하고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되었다는 관점입니다.
5. 하나님의 영광
결국 옛 계명이나 새 계명 모두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측면에서 모두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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