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분명한 방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정통교회는 대 혼란을 넘어 포기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는 무천년적 견해나 이전의 중심을 잡았던 역사적 전천년 견해 혹은 오래 전에 유행했던
세대주의적 주장들은 너무도 큰 결정적인 결함들이 있습니다.
1. 성경 안에서 접근하자
세계적으로 크게 확장되는 무천년주의는 계시록을 묵시문학과 요한신학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평생을 연구해도 답이 없는 묵시문학과 요한신학은 무천년주의자들이 버려야 할 도구들입니다.
묵시문학과 요한신학을 계시록 해석의 보청기로 채택하는 것은 무지입니다.
묵시문학과 요한신학의 보청기를 끼어야만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성령의 조명하심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2. 삼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
계시록은 예수님의 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령의 일도 많이 드러냅니다.
성부와 성자를 통해 일하시는 큰 사건들을 다루지 않으면 스스로 고립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재림 때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친히 같이 오시는 것을 잊었습니다(계1:4,8, 4:8, 11:17, 16:5).
성부도 같이 오시면서 하늘의 장막인 새 예루살렘 성도 같이 내려옵니다(계3:12, 21:2,10).
3. 대 환난과 심판재앙을 분별하자
성도들로 하여금 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을 보여주기도 해야 하지만,
무작정 공포감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대 환난은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이 성도들에게 가하는 핍박입니다.
어느 성도도 예외 없이 받게 됩니다(계2:10).
반면에 악인들은 한 사람도 대 환난으로 인한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판재앙들(인, 나팔, 대접)은 하나님이 악인들에게만 내립니다.
단 한 명의 성도들도 심판재앙들을 받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오해하는 계3:10절은 대 환난이 아니라 심판재앙을 말합니다.
계3:10절로 환난 전이냐 환란 후냐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4. 심판재앙들의 역사성 회복
무천년주의자들은 심판재앙들이(인, 나팔, 대접) 어느 시대나 반복해서 실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느 특정한 시기 즉 주의 재림을 앞두고 일어날 사건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코메디 같은 이론들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먹혀들어 갑니다.
이런 주장들은 애굽의 열 가지 재앙들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느 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심판재앙들은 재림을 앞두고 꼭 발생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재앙들입니다.
적그리스도 역시 재림을 앞두고 꼭 나타나야 할 인물입니다.
짐승의 우상이나 표 역시 역사성을 지녀야만 합니다.
5. 천년왕국 문제 해결
무천년주의는 천년왕국 문제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풍성한 것들을 제거했습니다.
재림 후 천 년이란 시간에 발생하는 모든 것들을 없애버렸고, 그 시간을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에 적용했습니다.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 즉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여 있는 긴장감 대신 천년왕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촌극을 빚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는 천년이란 시간 대신에 천년왕국이란 나라를 세움으로서
쓸데 없는 많은 것들 즉 상상의 산물들로 채웠습니다.
복음을 거꾸로 거스려 다시금 모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냥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성경적 말씀처럼 '기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어디서 왕 노릇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다 해결됩니다.
계시록 안에 있는 세세한 내용들을 완벽하게 해석하거나 묘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회가 분열되거나 상처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불완전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 혼란은 수습이 어렵습니다.
제가 계시록 해석을 새롭게 시도하는 이유입니다.
바른 해석이 나와야 이단들의 출현도 막을 수 있고, 더 이상 방황하는 성도들도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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