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갑자기 등장하는 세례라는 용어는 난감하게 합니다.
왜 세례요한 세례를 베풀었고 청중들은 그 의미를 묻지도 않고 받는지 궁금하게 합니다.
세례는 마치 하나님의 나라처럼 청중들에게 익숙하기에 무슨 의미인지 묻지 않게 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세례에 대해 단수가 아닌 복수를 사용해서 의미를 잘 이해하라고 말씀합니다.
*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히6:2)
요한이 전한 세례는 분명 하나였습니다.
물로 죄 사함을 위하여 베푼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마3:6)
왜 죄를 자복하는 것을 동물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지 않고 세례를 받을까요?
세례 요한이 외치는 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아닌 이웃들을 향한 죄로 보입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묻는 말(눅3:10)에 구체적으로 이웃 사랑이라 표현합니다.
*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없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눅3:11-14)
많은 유대인들과 특별히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제사를 드리기에 죄인이란 개념이 희박했습니다.
사실 이웃에 대하여는 눈을 돌리지 않고 쳐다보지 않으면 그만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거룩한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동물의 피로 죄 씻음에 참여할 뿐아니라 물로 씻는 정결의식이 많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부정함은 대개 물로 씻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더러워진 부분만이 아니라 전신을 씻었기에 세례는 의식적으로 본다면 침례가 더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알고 행한다면 의식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 보여집니다.
① 부정한 짐승의 사체를 만지면 그 옷을 빨아야 합니다(레11:24,25).
② 부정한 짐승의 사체가 그릇이나 의복, 가죽에 닿으면 물에 담궈야 합니다(레11:32)
③ 나병환자가 완치되었을 때 흐르는 물에서 잡은 새의 피를 일곱 번 뿌립니다(레14:7).
또한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합니다(레14:8).
④ 유출병이 있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정하게 됩니다(레15:7).
⑤ 설정한 자 역시 전신을 물로 씻어야 정결케 됩니다(레15:16).
⑥ 부정한 상태가 된 자들은 반드시 몸을 물로 씻은 후 성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레22:6).
물로 씻는 의식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규례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이런 의식들은 빈번하게 행해져야 하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의식자체가 문자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아래서 이웃으로 확대됨을 보지 못하면 그저 형식으로 그칩니다.
세례가 여러 종류의 규례를 따른 것이라면 복수를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직 하나로 보는 것이 본질입니다.
로마에 거주했던 히브리인들에 썼던 히브리서는 그런 의미에서 세례들이라 표현하며,
그런 구약적인 규례들에 대해 혼선을 가진 자들을 제대로 가르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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