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성령은 영원히 떠나지 않는가?

오은환 2017. 9. 7. 17:23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다보면 난해한 문제에 자주 봉착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성도에게서 <성령의 떠나심이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는 성경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떠난 자들은 처음부터 성령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신학자들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길 가, 돌 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을 가진 자들은

<상상적 신앙>을 소유했을 뿐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개혁주의 신학은 성도에게 성령이 내주하면 절대 떠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런 개혁주의적 사고가 과연 적합한 것일까요?

스데반 집사는 구약백성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령을 <거스렸다>고 말합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7:51) 


거스르다(안티핍토)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안티핍토는 '안티'와 '핍토'의 합성어로 싸우다, 공격하다의 의미를 지닙니다.

문맥적으로 보면 성령을 대적했다 혹은 성령을 따르지 않았다입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떠난 자들의 상태를 잘 나타냅니다.  


성령을 저버리는 경우는 어떤 상태를 묘사한 것일까요?

살전4:8절은 하나의 문장에 두 번이나 저버리다(아테테오)는 말을 사용합니다.

저버리다(아테테오)는 폐기하다, 거부하다, 거절하다, 깨뜨리다, 폐하다, 업신여기다는 뜻을 지닙니다.

거스렸다는 안티핍토나 저버리다는 아테테오는 모두 <의도적으로> 성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4:8)


성령을 저버리는 자들은 그저 상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심은 무슨 의미일까요?

근심하다(뤼페오)는 괴롭히다, 슬프게 하다, 고통을 주다, 슬퍼하다는 뜻을 지닙니다.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심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합니다.

근심하게 하심은 곧 성령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사63:10)


개혁주의 신학은 이런 면에서 성령의 떠나심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백성들에게 성령이 내주했는가에 대한 신학적 기반이 매우 약합니다.

구약의 성령론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신구약 성도들에게 구속의 언약을 맺음으로 성령이 내주했습니다.

이 언약이 유지되지 않으면 깨지는 것으로 성령이 떠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