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 = 어린양의 노래(15:1-8)
1.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은 곧 일곱 대접 재앙(1, 5-8)
일곱째 나팔 소리가 울릴 때(마지막 나팔), 예수님이 재림 하신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일곱 대접 재앙이 등장하면서 큰 혼동이 오게 된다.
일곱 대접 재앙(16장)이 마치 일곱 나팔 재앙들처럼 여러 가지 재앙들이 등장하면서,
재림이 또 다시 지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결론적으로 일곱 대접 재앙은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릴 때 주님이 재림하여 성도들이 휴거한 후
지상에 쏟아진다.
2.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울러 날 때(2-4)
1)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2)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십사만 사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매우 당황하게 된다.
우리는 십사만 사천이 모든 성도들이며, 그들 중에는 순교자도 있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성도들도
있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을 정의할 때 ‘모든 성도들의 애칭’이라 했다.
짐승의 우상과 그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목격한 성도들이다.
14장의 십사만 사천은 죽임당한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며(처음 익은 열매), 15장에 나오는 이들은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성도들 즉 십사만 사천의 또 다른 모습이다(나중 익은 열매).
이들이 부른 노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이스라엘이 극적으로 홍해 바다를 건넌 후 불렀던 노래이다.
그래서 본문을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일컫는다.
크고 기이한 일을 목격한 성도들은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3-4).
2) 모세의 노래(출15:1-18) = 어린양의 노래(계15:2-4)
이 노래는 영적인 구속의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행위에 대한 찬양이다.
순교당한 자들이 부른 노래가 아니라 살아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 즉 휴거를 경험한 성도들의
노래이다(시 8:10, 11; 사 38:18, 19).
모세의 노래가 애굽의 바로 왕으로부터 구원받은 노래라면, 어린양의 노래는 재림 때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자들로부터 목숨을 건짐 받음에 대한 노래이다(시 72:18, 124:7).
-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시 124:2-3),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급하게
개입하시는 구원의 손길을 체험하고 부른 노래이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는가?
- -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
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 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사 64:3, 4)
주님의 재림으로 성도들이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의 손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계 19:19). 좀 더 살펴보면 적그리스도와 세상의 군왕들이 모여 성도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계 16:12-16; 시 2:1-3).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런 전쟁을 미리 예견했다.
애굽 땅에서 나오던 때의 기적과, 주님의 재림으로 인한 기적의 유사성을 말하고 있다.
- 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미 7:15)
모세의 노래(출 15장) | 어린양의 노래(계 15장) | |
노래 부른 대상 | 바로와, 그 군대의 추격을 벗어난 자들(19) |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2, 계 19:19) |
장 소 | 홍해 바다 건너편 | 유리 바닷가(2) |
행하신 일에 대한 감탄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 |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3) |
일에 대한 결과 |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10) | 주의 의로운 일이 나타났으매(4) |
행하신 일에 대한 두려움 |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14, 15) |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4) |
3) 불이 섞인 유리 바다(2)
짐승의 핍박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서 있는 곳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이다.
이 모습을 이해함은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하는 열쇠이다.
이 장면은 재림 때 성도들이 변화된 모습으로, 공중으로 들림 받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때 성도들은 단순히 공중이라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이다.
유리 바다가 있는 곳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뿐이다.
-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계 4:6)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 새 예루살렘 성이 같이 오는가? 그렇다(고후 5:2; 히 13:14).
그것이 예수님이 받으시는 아버지의 영광이다(눅 9:26).
재림 때의 가장 큰 영광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장막인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이다.
-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3:12, 21:2,10)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4)
성부께서 예수 안에서 잠자던 자들 즉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과(히 12:23), 성자 예수님을 데리고
오신다. 이 말씀은 새 예루살렘 성 즉 하나님의 보좌 가운데 있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오겠다는
의미이다. 재림 때 예수님의 최고의 영광은, 약속대로 새 예루살렘 성을 모든 사람 가운데 드러내는
것이다.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아 도착한 곳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이다. 그곳에 수정같이 맑은 유리바다가 존재한다.
그러면 왜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서 있다고 하는가?
성도들이 들림 받고 남겨진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보좌로부터 시작 된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성도들이 본 심판 받는 이 땅을 묘사한 것이다(단 7:10).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2)
3. 불이 섞인 유리바다에 대한 관련 구절(2)
1) 이곳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1) 하나님의 보좌 앞
하나님의 보좌는 곧 하나님의 장막에 있다. 이곳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
계시록에는 유리 바다가 두 장면으로 비춰진다(계 4:6, 15:2).
일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유리 바다는, 평온함을 연상케 한다.
-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계 4:6)
(2) 심판의 장소로서 보좌
불이 섞여 있는 유리바다는 주님이 재림할 때의 모습이다.
새 예루살렘 성과 함께 오시는 아버지 보좌 앞에 성도들이 들림 받아, 심판 받는 땅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약성경 다니엘 7:10절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이 강같이 나오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민 16:35; 왕상 18:38).
-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베드로 사도가 본 불로서 심판하는 모습 또한 일맥상통한다.
베드로는 재림 때의 심판 형태를 불이란 말로 표현했다.
-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2) 유리 바다의 의미
‘유리’라는 의미는 ‘맑은’ 또는 ‘투명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새 예루살렘 성의 맑은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1) 새 예루살렘 성을 ‘맑은 유리’ 같다고 표현한다(계 21:18)
(2) 새 예루살렘 성의 길을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표현한다(계 21:21)
(3) 새 예루살렘 성의 모든 보석들의 투명함을 ‘맑은’이란 말로 묘사한다(계 21:11)
(4) 새 예루살렘 성의 강의 모습을,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라 표현하고 있다(계 22:1)
3) 재림 때에 함께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1장 참고)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 21:10)
-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고후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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