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서에는 좀처럼 비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갈라디아서에서 등장합니다.
*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갈4:21)
※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
바울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서 성령을 따라 난 자로 묘사합니다.
반대로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난 자 즉 성령과 무관한 자로 부릅니다.
이 비유는 매우 어렵지만 전체적인 접근과 이해로 풀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울의 전도여행의 결과 태동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복음을 받은 좋은 교회로 출발했지만 유대주의자들이 전한 율법으로 인하여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행15:1)
사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일부가 이런 사상을 지녔습니다.
예수도 믿고 율법도 행해야 능히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런 문제들이 곳곳에서 복음과 충돌했기에 주후 50 년에 예루살렘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아마도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복음이 이방인 가운데 역사함의 증거를 <성령을 받음>에서 찾습니다.
*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갈3:2)
이것은 율법을 무시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목적이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임을 모르고 그 자체가 구원을 제공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비유 - 아브라함의 두 아들(갈4:22) - 는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약속의 자녀)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약속의 자녀였던 이삭 역시 자연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 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갈라디아 교우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약속의 자녀의 보증이 된 것 같이
옛날 옛 언약을 받았던 아브라함과 이삭 역시 <성령으로 난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 됨을 보증합니다.
결국 신구약 모두 성령으로 난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갈라디아서 주석을 쓴 이한수 교수의 말을 첨가합니다.
"두 아들이 대표하는 두 종류의 백성에 강조점을 둔다.
하나는 육신적 혈통을 따라 태어나서 인간적 전승과 삶의 유형들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을 따라 태어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이다"
(갈라디아서, 이한수 저, 도서출판 횃불, p.441)
구약 백성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들이 성령을 따라 난 자들이며 성령을 따라 살아간 자들인 것을 증거합니다.
'9. 성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에 대한 오해 (0) | 2017.11.03 |
---|---|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시는가? (0) | 2017.10.20 |
청중들의 상태 진단 (0) | 2017.10.19 |
감동 (0) | 2017.10.14 |
거듭나게 하는 물과 성령 (0) | 2017.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