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청중들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아무리 좋은 말씀도 성령이 없이는 청중 안에서 어떤 효력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이나 청중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염려가 많은데 염려하지 않는다고 사라질까요?
더 근원적인 접근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엔 - in)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현재형)
(마10:20)
*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13:11)
*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미래형)
(눅21:15)
마태복음은 현재 구약 성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마가복음은 그런 구분 없이, 누가복음은 장차
주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암시합니다.
문제는 청중들이나 제자들이 이런 말씀을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복음서 현재 성령이 내주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제자들이나 이스라엘은 무슨 말인지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성령이 어떻게 사람 안에 머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진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다른 곳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 이후에 보내실 또 다른 보혜사에 대해서도 질문 조차 하지 않습니다.
장차 오실 보혜사에 대하여 제자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듯 받아들입니다.
* 그는 진리의 영이라...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현재형),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미래형)(요14:17)
어떻게 제자들이나 이스라엘이 장차 오실 보혜사 성령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현재 너희와 함께 계신 분이 그분이다(장차 올 성령님)라고 했을 때
생뚱맞게 생각한 제자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이나 이스라엘이 지금 현재 함께 하신 성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은 질문이 불필요합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토론이 없다는 것은 모두 다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하나님 나라에 대해 그것이 무엇이냐고 아무도 질문하지 않은 것과 동일합니다.
청중들이나 제자들이 너무도 잘 알았기에 설명이 불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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