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는 이 땅에서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마치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이 기다림을 아는 것처럼 그렇습니다(행21:11).
*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아노라(벧후1:14)
베드로가 말한 <나의 장막>은 오랜 시간동안 함께 했던 육신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생명이 다했다는 말입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은 죽음을 곧 육신의 장막을 떠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특별히 바울은 헬라의 문화권인 고린도 지역 사람들의 몸의 부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정리해줍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몸을 떠나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늘의 장막(집)으로 들어간다고
알려줍니다. 베드로 역시 그런 기본적인 신앙을 가지고 글을 씁니다.
*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벧후1:13)
바울은 직설적으로 장막 대신 몸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
바울은 육신의 몸으로 있든지 혹은 떠나서 하나님과 함께 있든지 <재림 신앙>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재림 신앙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장막(집, 처소 - 모두 동의어)>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죽어서 하나님께 가더라도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있음을 감사했습니다(고후5:1).
혹시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때도 <하늘의 장막>이 내려옴으로 일어날 놀라운 일을 기대했습니다.
*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집)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후5:2)
바울은 이 놀라운 일을 사망의 몸이 생명을 통해 삼킨 바 된 것이라 알려줍니다.
쉽게 말해서 썩을 몸이 영원한 영광의 부활의 몸으로 변화됨이 하늘의 장막(새 예루살렘 성) 때문에 일어납니다.
*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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