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신학자를 오리겐으로 볼 것인지 어거스틴으로 볼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오리겐은 풍유적 해석을 즐겨사용함으로 해석학에서 배척되곤 합니다.
실질적으로 어거스틴을 칼빈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신학자로 봅니다.
바울 → 어거스틴 → 칼빈
어거스틴은 무천년주의의 기본 틀을 놓았습니다.
특별히 지상에서 천년왕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계시록 20:1-6절을 재림 후 일어나는 일로 보지 않으며, 초림 때의 상황으로 봅니다.
*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20:4)
무천년은 초림과 재림 사이를 천년왕국 기간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기간이라 설정하기에 첫째 부활을 거듭남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5:21)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죽은 자는 살아나리라(요5:25)
그런데 여기서 '죽은 자'가 누구일까요?
무천년적 해석처럼 영적으로 죽었던 자가 살아남이 부활일까요? 거듭남일까요?
부활이 곧 거듭남입니까?
이상한 흐름으로 빠져버립니다.
요한복음 5:21절의 죽은 자는 곧 구약성도들을 말합니다.
구약성도들을 살리신 분이 아버지 곧 성부 하나님 입니다.
성자 예수님 역시 영혼을 살리십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과 이방인 가운데 있는 양들입니다.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느니라(요10:15,16)
부활과 거듭남은 서로 다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태어남이고 부활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무천년적 해석은 무리한 것으로 수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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