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지남

칼빈의 유아세례 이해

오은환 2018. 1. 3. 15:09

<칼빈의 유아세례 변증의 신학적 요점과 종교개혁적 의의> - 김요셉(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Ⅰ. 서론 : 종교개혁적 차원에서의 유아세례 논증 연구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과 급진개혁세력 양편을 상대로 올바른 성례를 회복하기

위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 가운데 유아세례를 둘러싼 재세례파와 주요 종교개혁자들 사이의 논쟁은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더 나아가 종교개혁의 성패를 좌우할만한 중요한 논쟁점들 가운데 하나였다.

 

칼빈은 로마 가톨릭이 7성례나 화체설로 왜곡시켜 놓은 예배를 성경대로 회복하려 했을 뿐

아니라, 재세례파들의 기존의 예배와 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급진적인 태도도

거절했다.

재세례파에 대한 칼빈의 비판은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변호하는존증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칼빈은 단순히 기존 질서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유아세례를 변호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교회 개혁의 기준과 방법, 그리고 방향을분명히 하기 위해 유아세례를

비롯한 성례의 참된 근거와 목적을 밝히려 했다.

 

 

Ⅱ. 유아세례의 정당성

1. 세례의 영적 본질

칼빈은 세례가 구원의 필수요소라고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의 오류를 거절했다.

더불어 신앙고백이 충족된 세례를 신자의 증거로 삼으려는 재세례파의 오류도 반박한다.

칼빈이 보기에 로마 가톨릭은 세례의 싱징에 집중한 결과 은혜의 수단인 성례를 은혜의 필수조건으로

삼아버렸다.

다른 한편 재세례파는 세례 수신자의 신앙고백을 너무 중시한 결과 성례의 결과를 본질보다 높여버렸다. 

 

칼빈이 본 세례는 영적본질에 사용되는 상징이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께서 확증해 주시는

죄 씻음과 중생의 언약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로마 가톨릭의 근본적인 문제는 세례를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의 행위>로 왜곡하여

영적 본질인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데 있다. 

재세례파 역시 세례의 필요성의 기초를 영적 본질인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신자의 변화>라는 외적

조건에 두는 오류를 범한다.          

 

교회의 모든 전통과 가르침을 모두 폐기 하려는 재세례파의 태도는 세례의 본질이 아닌 그들이 바라는

세례의 결과,즉 거룩하고 온전한 공동체의 수립에 매몰되어 있다.

 

2. 세례와 할례

유아세례의 근거는 곧 하나님의 언약이 갖는 일관성과 신실함이다.

세례를 통한 구원언약은 구속역사 전체의 일관됨을 강조한다.

이 논증을 위해 주목해야 할 것은 구약시대 할례와 신약시대 세례의 유사성이다.

하나님의 부성적인 자비와 성령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다고

증거하는 점에서 양쪽이 다 같다. 재세례파는 구약의 율법이 완전히 폐기되었다는

단절적 이해를 따라 할례와 세례의 불연속성을 고집한다.

 

칼빈은 할례와 세례가 모두 동일하게 육을 죽이는 표징이기에 유아에게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했던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 사함>을 의미했다.

할례는 육의 죽임과 중생을 의미했다(신10:6).

 

할례와 세례의 외적인 차이는 내면적 신비의 동일함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다.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는 그 본질인 내적 신비에서는 동일하다.

모든 족장들과 맺어진 언약과 우리와의 언약은 그 실질과 실상이 매우 같기 때문에 실제 이 둘은 하나다.

다만 처리 방법이 다르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폐지하신 것은 언약을 확인하는 방법이지 언약 자체는 아니라고 답한다.

 

3. 세례와 성찬

그렇다면 왜 성찬은 유아들에게 줄 수 없는가?

세례는 우리가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증하며, 성만찬은 우리가 구속을 얻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세례는 중생의 삶과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삶의 시작에 주어지는 죄 사함의 은혜를 확증한다.

이에 비해 성찬은 유아기를 지나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확증이다.

 

성례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확증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지탱하고 자라게 하며 강화하고

증진시킨다. 성만찬의 구약적 예표인 유월절의 경우에는 아무나 참여할 수 없었고, 이 절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만 합당하게 참가할 수 있었다(출12:26).

칼빈은 유아세례와 관련한 세르베투스의 오류를 비판하면서도 그가 성찬과 세례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두 성례의 공통적인 영적 본질, 즉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은 어떤 외형적인 요소들이나 내용의 차이

혹은 신자의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Ⅲ. 유아세례에 대한 바른 성경해석

재세례파는 요한복음 3장 5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조건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기

때문에 세례를 위해서는 현재의 중생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본문이 말하는

물은 세례라고 보는 해석을 반박한다. 

물과 성령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성령의 씻으심을 강조하려는 성경의 전형적인 반복적 표현일

뿐이다. (물인 성령이라 해석한다)

 

Ⅳ. 참된 성례개혁

성례개혁을 위해 칼빈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약속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 중생과 영원한

생명을 모든 성례의 요체라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러므로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직책 즉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제시하며, 그 안에서 하늘 은혜의 보고를 제시하는 직책을 가졌다는 것을 확정된

원칙으로 생각해야 한다.

성례들 가운데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치시는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사죄와 중생의

성취>이다. 구원을 받을 유아들을 주께서 먼저 중생시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세례의 기초가 되신 것 같이 할례의 기초가 되신 것도 명백하다.

 

칼빈은 세례의 효과와 관련해 다시 한 번 구약의 할례를 언급한다.

"즉 유아들은 장래의 회개와 믿음을 위해 세례를 받으며 아직은 회개와 믿음이 그들 안에 생기지

않았지만 성령의 은밀한 역사에 의해서 그 씨가 그들 안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Ⅴ. 결론 : 칼빈의 유아세례 변증의 의의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적 조건에 따라 제한함으로서 얻어지는 신앙생활 외적 건전함이나 공동체 조직의

도덕성은 교회개혁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교회의 올바른 가르침과 순순한 성례 시행도 그 자체가 기준이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일 뿐이다. 근원적인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