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계시록주석

처음 사랑(계2:4)

오은환 2018. 2. 27. 00:02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계시록 2:4절의 한 구절 안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세 가지 있습니다. 

모두 중요한 것으로 지금까지 크게 오해되어 바르게 정정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1. 그러나(αλλα - 알라)

계시록 2:4절 이전의 구절은 모두 칭찬입니다.

그래서 4절이 시작되면서 '그러나'(αλλα - 알라)로 반전을 이룹니다.

이제부터 책망할 것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책망 속에서 또 칭찬으로 바뀝니다.

6절 '오직'<αλλα - 알라>으로 반전됩니다만 한글은 전혀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합니다. 

일관되게 '그러나'로 번역했다면 이처럼 오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칭찬을 받던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림으로 책망을 받습니다. 

처음 사랑이 무엇인지는 6절에 잘 나옵니다. 

니골라 당의 꼬임에 빠져 복음을 떠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꼬임에 빠지지 않고 미혹을 이긴 자들은 칭찬을 받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큰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모두가 처음 사랑을 잃은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해석입니다.  

 

2. 너

'너'라는 대명사가 에베소 교회 전체인지 아니면 특정한 그룹을 지정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계시록 2-3장을 보면 교회를 지칭하는 '너와 너희'가 섞여 사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의미로는 하나의 공동체로, 또 다른 지적을 하는 곳에서는 구체적으로 두 부류로

나뉘어 부릅니다. 

 

에베소 교회 내에도 두 그룹이 존재합니다. 

영지주의 니골라 당으로 인해 처음 사랑을 버린 첫 번째 그룹과 반대로 대항해서 싸운 충성된

두 번째 그룹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다수이지만 모두 너라는 단수로 부릅니다.  

이런 부분은 문맥에 따라 모두 다수(복수)의 성도들이 존재함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3. 처음 사랑

처음 사랑은 또 다른 말로 처음 행위(5절)와 동의어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처음 받아들일 때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복음 자체를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편지나 교부들의 책을 보면 처음 사랑 혹은 처음 행위라는 단어가 복음을 가리킴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신과 폴리캅의 편지, 이레니우스의 이단반박 참고)

 

계시록은 처음 사랑이 <식었다>고 하지 않고 <버렸다>로 표현합니다.

영지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바른 복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구속주로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지주의를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라 정죄합니다(고후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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