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칼빈신학

칼빈과 루터 그리고 쯔빙글리

오은환 2018. 3. 24. 22:30

종교개혁자들은 동시대의 인물들이었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3대 개혁자들 - 루터, 칼빈, 쯔빙글리 - 은 만남이 거의 없었습니다.

루터(1483-1546)는 독일에서, 쯔빙글리(1484-1531)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칼빈(1509-1564)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했습니다.


루터와 쯔빙글리는 나이도 비슷했지만 칼빈은 26세 가량 차이가 났습니다.

공통적으로 세 사람 모두 천재적인 머리를 지녔습니다.

모두 성경을 원어로 보고 설교하고 논문을 쓸 정도로 박식했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전문가들은 그들이 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칼빈을 매우 훌륭한 젊은 신학자로 기억하지만 쯔빙글리는 신통치 않게 보았습니다.

"루터는 쯔빙글리가 피상적이었던 것만큼이나 칼빈은 심오하다고 생각하였다"(종교개혁사, CLC, 루이스 W. 스피치 저, 서영일 역, p.163)


칼빈도 쯔빙글리에 대하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특히 그가 가진 민족주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복을을 잘 알고 있는 쯔빙글리가 민족주의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함을 불편하게 평가했습니다.


반면에 루터와 칼빈은 서로를 매우 존중하며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생각했습니다.

루터는 칼빈의 저술 <신앙의 교훈과 고백>을 읽은 후,

"이 저자야말로 학식과 경건을 겸전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만약 오에코람과디우스와 쯔빙글리가 처음부터

이처럼 명료했다면 그처럼 좋지 못한 논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논평하였다(같은 책, p.163)


칼빈은 루터가 만약 자신을 악마라고 부른다고해도 자신은 여전히 루터를 존경하고 하나님의 종이라

부르겠다고 평가합니다.

쯔빙글리가 원어 성경으로 강해설교를 행함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을 만큼 뛰어났지만,

그가 사역했던 취리히와 또 제자들로부터 재세례파가 태동되었다는 것에서 그의 가르침이 명료하지 않았다는

루터의 증언이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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