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목회자들 사이에서 조용기 목사님처럼 되려고 그 음성을 흉내내곤 했습니다.
최근 라디오 방송 설교를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목소리가 조용기 목사님과 너무도 유사했는데 짝퉁이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분이 있다니?"
많은 부흥사들이 자신의 신령함과 기도 많이함을 드러내려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주여, 주여 외친다든가, 때로는 목소리를 깔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목소리 변조는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목소리로 또렷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서
음성변조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방언의 등장과 기도원 생활의 침투로 인하여
전혀 생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칼빈은 단순히 음성변조뿐만 아니라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는 자들을 책망했습니다.
"사실, 그들은(로마 카톨릭 사제) 신자들이 말씀에서 교리에 관한 것을 조금도 얻지 못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을 라틴어로 말했다.
후에는 미신이 팽창해서, 그들은 잘 들리지도 않는 목쉰 소리로 속삭여야만 축성(祝聖)이 잘 된다고 믿게 되었다."
(기독교 강요 하, 김종흡 공역, p.339)
현재 부흥사들이 얼마나 목쉰 소리로 주여, 주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때 우리 교회들 안에서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반성했으면 합니다.
작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미혹이 발생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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