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Why(2) -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오은환 2013. 12. 7. 17:31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 할지니라(4:22-24)

 

 

매우 중요한 예배에 대한 언급은 구약과 신약의 중심적인 흐름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 의미깊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인은 삶의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메시아 외에는 자신에게 희망이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1. 옛 언약 아래서의 참된 예배는 오직 유대인들의 예배 뿐

 

사마리아인들은 솔로몬 사후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단과 브엘세바에 두었으며, 임의로 제사장들을 세워 예배를 드렸습니다.

722년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후 이주민들에 의해 종교적 혼합주의로 변질되었지만, 거주민들은 하나님과 우상들에게

동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후 알렉산더 대왕이 사마리아에 성전을 건축해주었고, 이것이 유대인들과 갈등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반목 상태에서 여인은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질문합니다.

"어느 곳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습니까"?(요4:20)

예수님은 답변으로 특정 장소에서 예배드리는 시대가 끝이 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요4:21).

 

그러면서 사마리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한마디로 거짓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알지 못하는 자>에게 드려지는 것이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유대인의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의 예배는 <아는 것>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24절 처럼, <하나님은 영이시니 ...> 여기에 정답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이나 모두 동물의 피를 통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지금도 양을 잡아서 유월절 예식을 행합니다.

이들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취급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문제의 답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와 방법에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드려져야 합니다.

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성소에서 성령의 연합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속죄제물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속죄를 받은 자는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것이 비록 구약의 동물 피일지라도 효력이 있습니다.

 

이제 곧 가짜인 사마리아나 참된 예루살렘이나, 예배가 장소로인해 제한받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오직 한 곳에서만 드려져야 했는데, 그가 오심으로 이전의 모든 것은 실체이신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2. 왜 성령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여야 하는가?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왜 참된 예배는 성령과 진리로 드려져야만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으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나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사람들이 만든 형상 예배는 하나님이 거부하십니다(금송아지, 마리아...)

그것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지 못하고 오히려 타락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롬1:23)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제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아버지께(지성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는 진리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요18:38)

 

예수님은 이런 화법을 자주 사용하십니다.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가지도 못하느니라(요3:3,5)

다 같은 의미입니다.

성령은 예수님 자신으로 인해 깨끗해진 자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통로에 대한 상징으로 나오는 물, 진리, 길, 생명은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 성막의 제단을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정결케 된 성도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연합하여 내주하심으로 진정 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고, 영광스러운 아버지께 예배가 드려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만 속죄제물로 드려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2:20)신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3. 구약의 예배와 신약의 예배 연속성

 

구약의 예배는 동물의 피(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연합속에서 드려졌습니다.

물론 동물의 피의 제사를 제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그분을 상징하십니다.

구약의 동물제사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반복되어 드려졌습니다.

 

장소도 예루살렘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의 제사가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림자이기 때문에 <한시적인 특징>을 지닙니다.

 

이것은 구약의 모든 제도가 한시적인 특징을 가졌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예수 안에서 예루살렘이라 장소적 제한도 없어졌습니다. 

예수 안에서 반복되던 동물 제사도 예수님의 몸을 단 한번 드림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자신의 몸을 찢음으로 성전이 자기 몸이란 것을 증거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유대인들만 드려지던 예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졌습니다. 

예수 안에서 할례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세례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율법의 정죄함과 예수님에게 인도했던 기능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드리는 예식이 십자가에서 찢으신 성찬으로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영이신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목이 지성소 앞에서 막혀 있었는데(히9:8), 예수님이 자기 몸을 찢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 나아가도록 길을 여셨습니다(요14:6, 히10:19-20).

 

구약에서 이런 의미를 알고 드려졌던 예배들은 참된 예배라고 칭찬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십니다(요4:23)

신약역시 실체이신 예수님과 광명한 성령의 조명아래서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림이 아버지가 받으시는 참된 예배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