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4:1)
1. 이 일 후에
메타(후에, 가운데, ~을 향하여) 타우타(일들, 그러한, 이와 같이)는 계시록에서 총 6회 사용됩니다.
다섯 번(계4:1, 7:1, 9, 15:5, 18:1)은 곧바로 요한이 보았던 것을 기록했고, 나머지 한 번(계19:1)은 들었던
것을 묘사합니다.
메타 타우타가 단순히 앞의 환상이나 계시 이후를 설명하기도 하고, 또 앞의 것을 더 심도 있게 보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연속성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문맥에 따라 적절하게 보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2. 하늘의 열린 문
밧모 섬에 유배 중이던 요한은 주의 날에 환상을 보고 듣습니다.
천상의 예수님을 만나고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을 들은 후 하늘의 열린 문을 보았고 올라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늘의 열린 문은 하늘로 올라가는 곳에 어떤 문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올라간 것입니다.
천국(새 예루살렘 성, 아버지의 집, 하나님의 성, 낙원...)을 보여주기 위해 열린 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약속했던 '열린 문' 역시 동일한 장소로 보입니다(계3:8).
3. 이리로 올라오라
요한에게 올라오라고 소리쳤던 음성은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게 했던 예수님의 목소리와 같습니다.
그 음성이 열린 문 안에서 나는 소리로 보입니다.
즉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올라올 것을 명한 것입니다.
이 명령에 대한 성취는 성령님을 통해 2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성령 안에서(감동으로) 요한은 순식간에 하늘 보좌 앞으로 갔습니다.
어떤 자들은 요한이 육신의 몸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주장 하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요한의 영만
올라갔습니다.
요한은 지상에 있으면서 종이와 붓으로 계시를 기록합니다(계1:11, 10:4, 14:13).
성령을 통해 보여준 계시는 때로는 하늘 보좌에서, 어떤 것은 산 위에서, 또 어느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았습니다. 하늘이나 지상에서 필요에 따라 보았기에 요한의 몸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닙니다.
4. 마땅히 일어날 일들
'마땅히'(데이)는 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반드시>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4장 이후의 여러 사건들은 일어나도 되고 안 일어나도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그런 종류의 사건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의 재림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기에 성도들은 꼭 알아야 합니다.
마땅히(반드시) 일어날 미래적 사건들만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은 매우 협소한 생각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지만 과거 사건(타락, 구속)에 기반해서 일어나기에 때때로
시간적인 반복이나 과거의 사건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니 문맥 안에서 차분하게 보면 됩니다.
5. 내가 네게 보이리라
요한이 보고 들은 계시는 어떻게 전달되었을까요?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혼란을 일으키기에 잘 정리해야 합니다.
위 구절처럼 예수님이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세밀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이 보내신 예수의 영(성령)이 요한에게 보여줍니다.
성령께서 요한에게 보여준 계시를 여러 천사들이 적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계시의 영은 성령님입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엡1:17, 계22:6).
그러므로 계시는 예수님이 그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명령하신 것을, 성령께서 직접 요한에게 보여주든지,
아니면 천사들의 설명을 더하여 자세하게 이해시킨 것을 요한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성령을 제외시키고 그 자리에 천사만 넣는 것은 잘못된 번역이 되며,
이단들이 일어나도록 돕는 숙주가 되기 쉽습니다.
잘못된 번역으로 볼 수 있는 곳들을 속히 시정해야 합니다.
(계1:1절 천사 → 사자, 계22:6절 천사 →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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