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서신서

서신서 이해(2) - 에베소서

오은환 2014. 2. 24. 22:23

 

 

신약 대부분의 서신서는 영지주의의 거짓된 사상의 미혹을 이기도록 기록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나 히브리서와 같은 몇몇 서신서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그러므로 서신의 전반부는 우리가 받은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 중심으로, 후반부는 영지주의의

잘못된 사상을 복음에 비추어 드러내며, 또한 복음에 비추어 성도의 실제적인 삶에 대한 적용으로

채워졌습니다.

 

* 전반부 - 복음의 정체성

* 후반부 - 복음에 비추어 영지주의의 거짓을 드러냄과 성도의 삶에서 복음 적용

 

1. 복음의 정체성(1-3장)

 1) 하나님의 경륜과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온 우주를 향한 계획하심은 창세전부터 계획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계획하심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여러 번 강조합니다(1장).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예정했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엡1:4-5).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가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엡1:7).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하여 땅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 화목을 이루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게 하셨습니다(엡1:10).

 

또한 예수님은 그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가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받을 것을 보증하셨습니다(엡1:14).

성령은 또한 계시의 영으로서 우리 성도들의 눈을 밝혀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하신 것들의 풍성함을 알게

하시었습니다(엡1:19).

 

 2) 그리스도 통치의 실체로서 교회 

교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현재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그분의 통치를 실행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성도들 가운데 내주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23)

 

그러므로 성도는 곧 하나님께서 왕으로 높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을 실질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도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들도 성령의 내주로 인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에 아직은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곧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처음 익은 열매>가 됩니다(약1:18)

 

*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3)

 

 3) 교회의 역사

교회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곧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첫 단계가 됩니다.

구약에서 총회, 회중으로 나타나는 구약교회(카알)가 교회의 시작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광야교회라고 표현합니다(행7:38).

 

히브리 기자는 교회라는 말을 구약성경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용합니다.

*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히2:12)

형제들과 교회를 자연스럽게 바꿔가면서 사용합니다.

즉 부르심을 입은 형제들의 모임 다시 말해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 합니다.

이 말씀은 시편을 인용한 것입니다.

*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22:22)

 

  (1) 구약교회

구약교회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옛 언약을 바탕으로 세워진 이스라엘로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들어온 주변 민족들까지 포함된

공동체를 언급합니다.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도 아니었습니다.

출애굽 때 함께 나온 민족들과(출12:38),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의 경건한

무리들도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행13:16) 

 

구약교회는 신약교회처럼 동일한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성령이 내주했으며, 하나님의 통치가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만큼 책임감 있는 존재였습니다.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존재였고, 성령의 열매 맺음이 일어난 풍성한 교회로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2) 신약교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오순절 날 자신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혹자는 오순절이 진짜 교회의 생일이 아닌가 하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순절은 뜻 깊은 날로서 이방인들이 교회에 합류가 가능하도록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다 이루시고

문을 여셨던 날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교회됨을 위해 산고를 치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참감람나무를 유대인으로, 돌감람나무를 이방인으로 비유합니다(롬11:17).

사도요한은 구약교회를 해산하는 여인으로 비유합니다.

 

*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계12:2)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12:17)

 

신약교회는 이방인들로만 이루어진 교회가 아닙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두 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의 교회만이 있을 뿐입니다.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2:14)

 

  (3) 구약 시대 때 이방인들의 위치(엡2:11-22) 

구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묘사한 구약 시대 이방인들의 상태를 아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것으로 온전한 성경이해에 좋은 골격을 제공합니다.

 

  유대인 이방인
할 례        할례자           무 할례자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12)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12)
언약의 약속들 받은 자 외 인(12)
삶의 목표 소망과 하나님이 있음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12)
율 법 o x
성 령 o(15,22) x(18, 3:5)
자녀 됨 하나님의 권속 x
교회 o x(21)

 

구약시대에는 모든 것이 예표로서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실체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엡2:12)라고 선언합니다.

구약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효력으로 성령이 있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 그 때에 너희는(이방인) 이스라엘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엡2:12)

* 너희도(also, too)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바꾸어 <성령 안에> 거한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구약 역시 신약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로 속죄함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선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2. 영지주의 미혹된 사상들과 복음의 비교

 1) 삼위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 이유는?

바울은 하나님도 한 분, 주도 한 분, 성령도 한 분이라 단언합니다(엡4:4-6).

당연한 내용을 다시금 확신시키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런 부분도 에베소 교회에서 말썽을 일으킨 자들이 누구인지 이해할 때만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신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내고 인정해야만 신도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최고의 신도 한 분이 아니라 두 존재입니다.

충만한 최고의 신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신들을 유출해 냅니다.

충만한 존재가 넘쳐서 흐를 때 또 다른 신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삼위 하나님을 비슷하게는 이해하지만 거기에 머물지만 못합니다.

바울은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사상과 복음을 대조하면서 참 복음으로 돌아올 것을 진정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2)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을 상기시켜줌

영지주의자들은 중재자로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지 않고 오직 영으로 왔다고 주장합니다.

육체로 오셔서 행하신 죄로부터 속죄, 십자가의 죽으심, 육체로부터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신과 미지의 세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최고의 중재자라 여깁니다.

그런 중재자가 육체로 왔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실제적으로 육체로 오셨고, 다시 하늘에 오르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래야만 그분을 통해 이루신 모든 구속사역이 온전히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엡4:9)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이 굳이 죽으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지의 곳에서 알지 못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신에게 돌아갈 지식만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지식을 전달한 자가 바로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순히 최고의 신의 전령으로 그 존재에게 돌아갈 지식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뛰어난 중재자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속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성화를 추구하는 삶 자체도 신령한 지식과 비교해서 유익하지 않게 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삶 자체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들이 행하는 금식이나 반대로 방종한 삶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은 신령한 지식을 소유해서 이미 다 깨달았다고 보기에 더 이상 어떤 하나님의 법에도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게 됩니다.

 

 3) 방탕한 삶과 영지주의 사상의 조화

예수님은 영지주의를 <사탄의 교훈>이라 정죄했습니다(계2:24).

왜 영지주의를 사탄이 만들었다고 했을까요?

영광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리에 사탄을 올려놓았고, 하나님을 끌어 내렸습니다.

 

특히 창조에 대한 반격은 성경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가 만연한 것은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 처음부터 결함을 가진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시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실수를 감추기 위해 그것을 은폐하고, 인간들을 속여 깨닫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전개합니다.

그러므로 사탄, 하와, 가인 같이 범죄한 자들을 오히려 위대한 인물들로 바꿔 놓았습니다.

반대로 순종한 자들을 무지한 자들로 몰아갑니다.

 

결국 이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정 반대로 가야만 진짜 신령한 지식(영지)을 깨달은 자로

인정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있어서 창조질서는 없어져야 할 것들로 간주합니다.

그들이 결국 방탕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자들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정죄하며 이들과 함께 하지 말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해

줍니다.

 

                -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영지주의자(고후6:14-16) -

 

성 도 영 지 주 의 자
믿는 자(14,15) 믿지 않는 자(14, 15)
의(14) 불 법(14)
빛(14) 어두움(14)
그리스도(15) 벨리알(15)
하나님의 성전(16) 우상(16, 요일5:21)

 

우리가 무심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여기서 믿지 않는 자는 세상에 사는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았지만 그것을 버리고 사탄을 주인으로 모시는 영지주의로 돌아간 자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5:9-10)

 

바울서신이나 유다서에 나오는 영지주의자들의 방탕함과 하나님을 대적함은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영지주의에 대한 방대한 저서는 이레니우스의 <이단 반박>입니다.

이 책은 영지주의에 대해 정말 저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타락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것입니다.

 

3. 성령의 사람으로서 성도의 삶

죄인된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속죄함을 입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도 동일한 것입니다.

 

공생애 기간에 전하셨던 예수님이나 승천하신 후 사도들의 가르침은 모두 동일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만 전적인 승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원리는 너무도 단순합니다.

 

*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엡4:30, 6:18)

*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엡3:21, 4:16)

 

이 세 가지 원리는 우리에게 주신 보물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