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이 병이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히스기야 왕은 힘든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최고의 의사들과 좋은 약들을 써 보았지만 병은 차도가 없고 오히려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아가 죽을 것이라 선포하며 삶을 정리하라고까지 합니다.
히스기아에게는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졌습니다.
★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히20:1)
하지만 히스기야의 기도와 눈물을 보신 하나님은 그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병을 낫게 합니다.
무화과 반죽을 상처 위에 놓게 하여 낫게 합니다.
※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왕하20:7)
히스기야의 병을 무화과 반죽이 치료했을까요?
아니면 치료받았음의 증거로 무화과 반죽이 사용되었을까요?
여리고에 왔던 엘리사는 그곳의 물이 나빠 토산의 열매를 맺지 못함을 고쳐줍니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물 근원에 뿌립니다.
또한 그것이 치유되도록 말씀합니다.
★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왕하2:21)
새 그릇과 소금은 치료하심에 대한 외적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와 같은 형태는 예수님의 치료사역에도 나타납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실 때의 모습입니다.
★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막7:30)
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칠 때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요9:6)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동일한 패턴을 따릅니다.
★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막6:12-13)
왜 말씀만 하지 않고 이런 의식들을 행했을까요?
복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들은 구하는 자들에게 징표가 됩니다.
오늘날 로마 교회나 몇 단체에서는 이런 도구들을 활용하려 합니다.
<성수>를 뿌리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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