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하는 신자들이 싫어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특별히 좋은 것인데도 받기를 싫어합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주저주저합니다.
두 가지만 말씀 드릴께요.
1. 성령이 계신 것을 알려고도, 믿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성령이 계셨고, 구약 성도들 가운데 내주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고 동행했는데 그것을 싫어합니다. 왜 이런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날까요? 만일 세대주의 성경 이해 가운데 성령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나눈 틀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음이 드러납니다. 다른 신학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신구약 모든 시대를 통치하셨다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동안 사람을 통해 통치했었다라는 견고했던 이론들이 심각하게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자리에 <그리스도>로 대치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도 올려 놓았습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가운데 항상 함께 했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했을까요? <사자 - 말라크>로 함께 했을까요? 아닙니다. 아버지의 품 안에 계셨던 예수님이기 때문에 곧 하나님과 함께 움직였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요일1:2) 바울은 고전 10장에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반석에서 물을 마실 때 그리스도가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출애굽 한 후 불손종한 이스라엘 때문에 성부 하나님은 그들과 직접 함께 가지 않으려 합니다. * ...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라(출33:3) 이러한 뜻을 드러내신 하나님께 모세는 간청합니다. 그래서 이런 답변을 듣습니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33:14) 바울은 이런 구절들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갑자기 성육신 하신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 조상들이 출애굽 할 때 성부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 이심을 강조하십니다. 이런 그리스도를 배척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목숨걸고 섬기는 성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과 같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의 근본 진리를 가장 잘 이해했던 스데반 집사는 두 가지로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합니다. 하나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이고, 또 하나는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 ...너희도 너희 조상들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7:51) *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7:53) 왜 스데반은 성령 대신에 그리스도를 거스렸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성령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조명하고,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 성부의 오심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요즘 시중에 나온 신앙서적 가운데서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몇 가지> 시리즈가 많습니다.
성도가 죽기 전에 가장 아쉬워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어떻게 볼까?"
평소에 어떤 분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마음에 두지 않다가 갑자기 만나게 되면 어떨가요?
"계면쩍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너무 미안하여 낯이 화끈거림"을 표현한 순수 우리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만남을 주저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고전13:12, 계22:4)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결과 성부께서 예수님의 재림 때 함께 오신다는 것(살전4:14)을 탐탁잖게 여깁니다.
성부께서 아들 예수님의 재림 때 함께 오신다는 말을 한 귀로 흘러 버립니다.
계시록은 매우 중요한 사건을 세 번에 걸쳐 표현합니다.
* ... 이제도 계시고, 전데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계1:4, 8, 4:8)
성부의 오심만 제대로 이해해도 계시록의 난제들은 순식간에 풀립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예수님의 재림 때 함께 오심(계3:12, 21:2,10)도 쉽게 이해됩니다.
천년왕국 문제도 그렇습니다.
계시록의 다른 어려웠던 문제들이 성부의 오심 하나만 제대로 보아도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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