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눅11:5-8)

오은환 2014. 6. 25. 16:12

본문은 기도를 종종 오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밤 늦게 찾아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예고없이 와서 그를 대접할만한 음식이 없습니다.

 

여기서 배경이해가 필요합니다.

귀찮더라도 자기 집에서 떡을 만들어 주면 될 것인데, 늦은 밤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자녀들과 깊이 잠든 친구를 찾아가 부탁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11:8)

 

1. 간청함이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인가?

많은 가르침이 기도란 끈질기게 해야 응답받는다는 구절로 위의 내용을 인용합니다.

잠자는 친구를 귀찮게 했더니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귀찮게 함을 피하려 주었다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문제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에 주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주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분으로 묘사합니다.

 

 

2. 확신에 대한 응답인가? 

 

예수님 당시 가난하게 살았던 유대인들은(로마제국과 관리들의 횡포) 저녁시간에는 한 집을 선택해서 

마을의 떡을 굽게 했습니다. 시간과 뗄깜, 식품을 절약하기 위함 같습니다. 

일정한 양을 나눈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고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난감합니다. 

물론 긴 시간이 걸려서 자기 집에서 떡을 구울 수 있으나, 마을에 그날 저녁 떡을 구웠던 집에만

떡이 남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다른 집에 가봐야 아무런 것도 빌릴 수 없습니다. 

오직 떡을 구웠던 그 집만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이런 절대적인 확신이 있기에 찾아갔고, 그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없다고 할 수 없기에

귀찮더라도 일어나서 떡을 제공합니다. 

 

위 구절은 필요할 때 반드시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 우리들이 찾아가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주실 수 있기에 우리가 기도로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도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자를 찾아가듯이, 우리도 기도할 때 줄 수 있는 아버지라는 확신이 있어야 

기도가 가능하고 응답받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