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년 신학자들이 계시록을 다루는 수준은 염려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재림의 시점에서 엉뚱한 것을 논하면서 초점을 흐리게 합니다.
*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11:15)
"왕노릇하시도다(에바실루사스)'는 원어에 의하면 아오리스트(aorist)로서 '왕노릇하셨도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글역 성경에 보면 거의 다 현재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심판 날의 시점에서 지나간 세상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렸음을
고백하는 말이다"(요한계시록 주석, 변종길, p.188)
변교수는 이곳에서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습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렸다(과거). 그리고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과거).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가시적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했음을 피해갑니다.
원어에 가장 가깝게 변역한 성경입니다.
* 일곱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과거)...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됐으니(과거),
그 분이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미래)(우리말 성경)
또한 19:6절의 통치하시도다 역시 동일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재림으로 통치가 가시적으로 시작되는 것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심판의 결과로 하나님의 통치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셨기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시고 세상 나라가 주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셨기
때문에 마침내 의로운 심판이 행해졌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는 바벨론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지나간 세상 역사 기간 동안에, 곧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 동안에
하나님이 통치하셨음을 고백하고 찬송하는 것이다"(p.300-301)
계시록 20:4절에서도 역시 동일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활한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렸다는 것에도 부활을 빼버리고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통치로 바꾸었습니다. 재림과 함께 성도들이 <부활하여> <가시적으로> 주님과 함께 통치하심을
뺀 나머지 주장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영혼이 '살아난 것'(에제산)은 이 지상에 있을 때 '중생'에서 이미 일어난 사건이었다(요3:16, 5:25, 6:54).
그 결과로 그 영혼들은 낙원에서 '생명'을 누리고 있다"(p.333)
그러나 세 곳 모두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통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 곳 모두 재림이 일어났기에 예수께서 세상 나라를 <가시적으로> 다스린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을 통해 성도의 내면적으로 펼쳐졌다면, 재림부터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시적으로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역시 동일한 설명을 합니다.
※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단7:26-27)
무천년주의의 계시록 해석의 특징은 재림을 희석시킵니다.
그리고 현재적 삶을 매우 강조합니다.
무천년주의나 천주교가 가진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장점이 되면서도 계시록을 망치는 해석이
되기에 주의 깊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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