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도미티안 황제 때 소아시아에서 몇 성도들과 함께 밧모섬에 유배 당합니다.
그곳에서 계시록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냅니다.
상식적으로 일곱부의 서신이 쓰여졌고, 일곱 교회에 보내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각 교회의 상황은 서로 잘 알고 있기에 계시록 2-3장은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머지 4장부터 22장까지 각 교회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요한이 각 교회를 순회하면서 알려주었을까요?
아니면 요한이 그의 제자들이나(속사도들) 장로들을 불러서 해석해 주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각 교회들은 계시록을 읽고 듣기만해도 충분히 이해했을까요?(계1:3)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이나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는 계시록을 잘 이해했을까요?
최소한 두 사람은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를 쓴 폴리갑이나, 순교를 앞두고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쓴
이그나티우스는 감독으로서 교회들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도미티안(81-96년)의 박해를 받아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그가 죽자 곧바로 에베소로 귀환했습니다.
이 때 밧모섬에서 기록한 계시록을 가지고 나왔는지 아니면 그 이전에 보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계시를 받은 시점도 그가 귀환할 시점과 비슷한 시기인지 아닌지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명확한 것은 요한이 유배지에서 돌아온 후 상당 기간을 생존했다는 점입니다.
(요한은 트라얀(98-117년) 황제 시절까지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귀환 후 최소 3년에서 최대 20년 정도는
생존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110년경 순교할 때 요한은 이미 세상을 떠난듯 보입니다)
최초의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요한의 일생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려줍니다.
그가 돌아온 후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을 돌보았습니다.
"이 무렵 예수님의 사랑 받는 제자였던 사도이며 복음서 기자인 요한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도미티안의 사망을 계기로 유배지에서 귀환한 뒤 '아시아의 교회들'을 다스렸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은성, 엄성옥 역, p.144)
요한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순례했을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또 유세비우는 요한이 감독들을 만났던 것을 기록했습니다.
"주님의 제자 요한과 함께 협의하였던 아시아의 모든 장로들은 요한이 그것을 자신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증언한다... 독재자(도미티안)가 죽은 뒤 밧모 섬을 떠나 에베소로 돌아온 그는
초청을 받으면 인근에 있는 이방인의 지역도 방문하였다"(같은 책, p.144-145)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가거나 장로들을 불러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계시록은 당시 교회들의 내부 문제들도 많이 거론하였기에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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