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태어난 시기와 환경부터 그가 행했던 큼지막한 일들과 마지막 생애를 다루면서,
영향력을 드러내줍니다.
언뜻보면 너무도 잘 설명해서 더 이상 어떤 것도 불필요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신자와 불신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거룩하게 된 신자는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결코 묘사하기 어렵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았던 근원을 묘사하지 못하고 그가 행한 일들만 나열한다면 마치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구약의 성도들이 어떤 상태에서 살았기에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 본질을 보아야 하며,
그리하여 우리 역시 성령을 따라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1. 아담은 성령이 내주했는가?
1) 타락이전
(1)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타락하기 전 성령이 내주했는가에 대해 살펴봅니다.
피조된 아담의 가장 큰 특징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아담과 같이 무죄상태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이라 표현합니다(골1:15).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라 언급합니다(골1:19).
또 다른 말로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라 드러냅니다(골1:9).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묘사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담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을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질그릇과 같은 흙으로 지음 받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형상인 성령의 내주하심 때문입니다(고후4:7).
인간은 결국 두 가지의 형상 - 흙에 속한 형상과 하늘에 속한 형상 - 을 지녔습니다.
*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9).
바울은 계속해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신령한 몸> 혹은 <영의 몸>으로 표현합니다.
신령한 몸이나 영의 몸은 원어로 모두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기에 결국 같습니다.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가진 몸이란 의미입니다.
흙에 속한 자의 형상 또한 장차 이루어질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반영합니다.
비록 흙이라는 피조된 상태로 성령이 내주하지만 이것은 창조의 목적이 아닙니다.
성령의 내주가 곧 장차 있을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보증하는 단계입니다(고후3:18, 고후:5:5, 롬8;11)
이기는 자 즉 성령을 따라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들에게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은 주어집니다.
(2) 아담과 예수님의 대조
바울은 로마서 5장과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합니다.
아 담 |
예 수 님 | |
하나님의 형상 |
O |
O |
성령의 내주 |
O |
O |
창조 |
천지창조 |
재창조 |
언약의 대표자 |
실패 - 죄의 왕 노릇 |
성공 - 의의 왕 노릇 |
대표성의 상징 |
장차 오실 자의 모형(롬5:14) - 그림자 |
그림자의 실체 |
비교되는 아담과 예수님은 원형과 모형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 존재의 시작은 여러 면에서 같습니다.
죄가 없는 상태이며,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아담은 실패자가 되었고 그 결과 죄의 왕 노릇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깨어졌고 인간은 아무도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 타락이후
예수님의 오심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죄인된 자기 백성을 구하러 오셨고(마1:21), 그러한 일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사53:10, 요1:29).
죄사함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곧 성령의 내주를 통해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의도하심입니다.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10)
예수님을 통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도 이제는 이스라엘과 같이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위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이 함께 일하심을 먼저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방인들도 선민 이스라엘과 함께 언약 백성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구약 이스라엘이 <언제부터 성령 안에 있었고, 하나님의 처소가 되었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부터 오순절 성령강림까지 성령이 옛 언약 아래서는 내주하지 않았을까요?
만일 성령의 내주가 없었다면 옛 언약 아래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가진 신앙과는 전혀 다른 종교로 취급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회복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을 거룩하다고 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고 성령이 내주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칭호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바울은 이스라엘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옛 언약 아래서 <성령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었고, 거룩한 백성되었음>을 알려줍니다(고후6:16-18).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처럼 죄인이 아니었다고 드러냅니다.
*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갈2:15)
이스라엘은 또한 이미 예수 안에 있었다라고 밝히 말씀합니다.
*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엡2:12)
옛 언약(구약) 아래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었음>을 밝히 보여줍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신33:27)
옛 언약 아래 있었던 구약의 족장들과 이스라엘은 이미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이며, 그러므로 성령이 거주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으며(약4:5),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진 자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지만 실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영원하신 계획이었고, 구약 백성이 누린 복음의 영광이었습니다(히4:2,6, 고후3:10-11, 요1:16).
2. 아담과 성령
혹자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 성령이 인류에게서 완전히 떠나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잘 논의되지 않았지만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 곧 성령의 충만한 내주하심임을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타락전 아담의 지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한 지혜입니다.
*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6:3)
성령충만했던 아담의 지혜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의 근원을 속속히 알았습니다.
수많은 들짐승들과 새들을 보는 즉시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름이란 그 사물의 특징을 반영하여 나온 것이기에 보통사람이 짓는데는 엄청난 수고와 지혜가 따르는 몹시 피곤한 일입니다.
성령에 충만하지 않았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2:19)
또한 성령충만했던 아담의 지혜는 처음 보았던 하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짚어 냅니다.
더군다는 아담은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의 몸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
이런 아담이 성령을 거역하고 배반하였습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표현이지만 더 세밀하게 말하면 그 속에 내주한 성령을 속이고 반역한 것입니다.
*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 하였느니라(호6:7)
이스라엘의 타락을 아담의 타락과 동일시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많은 기적들을 몸소 체험했던 출애굽 세대들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라(사63:10)
타락한 아담과 이스라엘이 같은 죄목으로 형벌을 받는 모습들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읽으면서 아리송할 때가 많습니다.
왜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사랑하지 않고 압제함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렘7:6, 22:3).
자신의 동족들을 노비로 삼기도 합니다(렘(34:8-11).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사랑 대신에 착취를 행할 때 심판의 이유가 된다고 선지자들이 선포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의 사람들이 성령을 거역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 속에 내주한 성령의 음성을 고의적으로 거부한 자들은 성령 훼방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순종한 자들을 견인하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엡4:30), 거부한(반역) 자들은 진노의 심판을 행하는
두 가지 얼굴을 지닌 하나님입니다(사63:10, 출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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