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칼빈신학/23. 칼빈 <신약> 주석

거듭남은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가?(칼빈)

오은환 2023. 2. 14. 08:48

거듭남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칼빈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칼빈의 요한복음 주석 1권을 통해 살펴 봅니다.

 

1. 칼빈의 유대인 이해

칼빈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언급하기 전 그가 매우 지식적인 사람(바리새인)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일반 군중들 보다는 훨씬 더 지적이며 신앙도 높은 상태라

생각합니다. 두 부류의 신앙 상태를 나눠서 기록합니다. 

 

 1) 니고데모(p. 92)

일시적인 믿음과 연약함을 지녔다.  

니고데모가 찾아온 목적은 종교의 기초를 배우고 싶은 것 이외에는 없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거듭나야 한다.

 

 2) 일반 백성들

니고데모가 이 정도라면 일반 백성들의 신앙의 기초는 매우 허약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늘에 속한 기초를 배워야 한다.

 

평가) 칼빈은 유대인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하는 것은 그의 구약관을 보여주기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니고데모를 비롯한 유대인들을 성도로 놓고 평가한 것일까요?

만일 성도로 인정하고 평가했다면 마치 중세 시대처럼 매우 빈약한 상태로 

보았을까요?

 

니고데모를 비롯한 유대 청중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하여 

앞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거듭났는데 모르고 있다는 것일까요?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2. 표적과 거듭남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그가 행하신 표적들을 보았기 때문이라 봅니다. 

예수님의 표적은 그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확신을 갖게 했으며, 니고데모는 

그런 표적들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칼빈은 봅니다.

 

 1)  니고데모의 마음의 상태

칼빈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치 가시떨기 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의 마음이 가시로 가득차 있고, 많은 독초로 무성해져 있기에, 

신령한 교훈을 받을 마음의 여지가 거의 없었음을 아셨다. 이러한 권고는 어떠한 방해물도

그의 가르침을 헛되게 하지 못하도록, 니고데모의 마음 밭을 갈아 깨끗이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단 한 사람에게 했음을 기억하자"(요한복음 주석1. p.95) 

 

 2) 니고데모는 거듭나지 않은 상태였을까?

칼빈은 니고데모가 거듭나지 않았다고 표현합니다. 

그가 거듭남이 결여된 상태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는 한, 네가 나를 선생이라 인정한다 해서

별로 대수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p. 96)

 

칼빈은 더 나아가 니고데모가 구약 교회 성도가 아니라고 판정합니다.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사람이 먼저 거듭나지 않는다면 교회에 들어올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 간주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표현에서 우리 모두가 

나면서부터 하나님 나라와는 관계 없는 외국인과 나그네라는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께서 중생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기 까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대치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보편적인 것이며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이다."(p. 96)

 

칼빈은 할례를 통해 주어지는 언약이 어떤 효능이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어린 아이들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3. 물과 성령

칼빈은 거듭나게 하는 물과 성령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두 단어는 각각의 다른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라 물이 곧 성령을 수식하는 언어라고 주장합니다.

불이 성령을 수식하듯 그렇다는 견해입니다. 

 

"그리고 이 물은 우리를 새롭게 씻어주고, 우리가 전혀 불모의 상태로 태어났을 때, 

우리 위에 부어진 그의 능력을 따라, 우리에게 하늘의 생명의 원기를 옮겨주는 성령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p. 99)

 

칼빈은 크리소스돔의 견해 - 물이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 - 를 반대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이상하게 전개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크리소스톰은 이 물이라는 낱말을 세례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세례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이 될 것이다.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로부터 영생의 소망을 위해 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p. 98)

 

칼빈은 어떤 생각을 가진 것일까요?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 성령이 거듭나게 한 것일까요?

거듭났기에 그것을 공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물세례를 받는 것이 아닐까요?

유아세례에 대해서 칼빈의 이런 프레임이 적용될까요?

 

4. 성경은 어떻게 거듭난다고 말씀하는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구절만 존재한다면 거듭남의 가르침은 미궁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여러 곳에서 상징이 아닌 말씀으로 증언하기에 어떻게 거듭나는가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1) 구원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여기서 씻음과 새롭게 하심은 동일한 사역이 아니라 각각의 사역을 묘사합니다. 

씻는다는 표현은 죄를 정결케 하심을 표현하며, 정결한 후 성령의 내주로 인한 

거룩하게 하심은 분명 시간적 순서에 따라야 합니다. 

반드시 정결하게 된 후 거룩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략하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후 곧바로 성령을 선물로 받아

거룩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2) 씻음과 거룩함 그리고 의롭다 하심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입었느니라(고전6:11)

 

 - 씻음(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거룩함(성령 안에서)

 - 의롭게 됨(아버지의 선언(인정)으로)

 

여기서 씻음과 거룩함은 각각 그리스도와 성령의 일하심으로 묘사합니다. 

마지막에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 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②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③ 우리로 그(성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딛3:7)

 

5. 거듭남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요3장)를 통해 거듭남의 문제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언제부터 일어났는가로 옮겨집니다. 

왜 그럴까요? 니고데모가 계속해서 이해하지 못했고, 의심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칼빈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요3:11)

 

아쉽게도 칼빈은 우리가 누구인가까지만 진술합니다. 

복수로 등장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종들로 한정합니다. 

특별히 선지자들이라 제한합니다. 

선지자들이 예수님처럼 거듭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복수는 단수 대신에 쓰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연합하고 있으며, 

또 그들을 위하여 말하고 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p. 104)

 

칼빈의 견해를 따르면 거듭남을 보고 경험(실제 거듭남)한 부류는 모든 구약 성도들이

아니라 선지자들만 가능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의 원리를 알고 보았다(체험)는 것이 이제까지 보편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됩니다. 

더 아쉬운 부분은 거듭남의 사건들이 어떻게 알았고, 보았는지에 대해서 침묵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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