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을 해석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문자와 상징이란 보물을 들고서
한 쪽만 택하려 합니다.
다른 하나는 버려야만 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계시록에서 상징으로 표현된 것은 대부분 자세한 설명이 따르며,
그 결과 상징이 가리키는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다만 인간의 성급함이 스스로 혼란을 만들어 냅니다.
대표적으로 두 곳을 통해 문자로 바라본 곳이 상징이며, 상징으로 바라본 곳이 문자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
1. 십사만 사천 : 문자에서 상징으로
세대주의자들의 성급함은 계시록 7장의 앞 부분만 읽고 덮어 버립니다.
십사만 사천 명을 분명하게 언급했고 또 자세하게 12 지파에서 12,000명씩 나오닌까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계7:4-8).
그런데 계속해서 십사만 사천이 누구인지 드러내는데 유대인들만 포함된 성도들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유대인 성도들만 심판 재앙(나팔, 대접 재앙들)에서 보호받을까요?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을 여러 각도로 조명해 줍니다.
온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이며(계14:3),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며(계14:4),
순결한 자들이며(계14:4), 절대적으로 어린 양께 순종한 자들입니다(계14:4).
이들은 처음 익은 열매들입니다(계14:5).
십사만 사천을 문자적으로 본 것은 나머지 여러 표현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문자적 해석이 마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재림을 앞둔 모든 성도들을
언급합니다.
성도들을 심판재앙(인, 나팔, 대접)에서 구별하고 보호하기 위해 인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도 인치심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2. 두 증인 : 상징에서 문자로
두 증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두 촛대이며 두 감람나무라고 생각해서 무천년적인 접근을 선호합니다.
상징적 표현으로 몰고가기 쉬운 두 촛대와 두 감람나무는 다시 문자로 돌아갑니다.
두 증인을 두 선지자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계11:10)
두 증인은 예언 사역을 하는(계11:3) 두 선지자로서 문자적인 해석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 증인을 문자에서 상징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잘못된 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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