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을 고민스럽게 만든 구절이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마저 재림의 날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모르면서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난감해 합니다.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성부 하나님만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아들 예수님도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계3:1).
하늘의 존재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묘사합니다.
* (네 생물, 이십사 장로, 천군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
* (만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5:13)
하늘의 존재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능력을 동일하게 평가하며 찬송합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자신과 천사들까지 재림의 날(헤메라스, day)과 때(호라, hour)를
모른다고 단언합니다. 다만 성부 하나님만 아신다고 알려줍니다.
이것을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요?
1. 수동적 의미
예수님의 재림은 어떤 의미에서 수동적 사건입니다.
우리 시각에서 본 그 날과 그 시간은 예수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결정하고 예수님은 순종합니다.
혼인잔치를 다 준비하는 분은 아버지입니다.
아들은 준비되어지는 잔치를 보며 즐거워하며, 주인공으로 참여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장차 오실 자'를 성부 하나님에게 적용합니다(계1:4,8, 4:8, 11:17, 16:5).
아들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리어 등장합니다(살전4:14).
결혼식의 주최는 아버지가 하고, 아들은 주인공으로서 영광을 받습니다.
* 또 그가(아버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아들에게) 경배할지어다(히1:6)
2. 능동적 의미
수동적 의미뿐만 아니라 능동적 의미도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재림 때 어떤 분야에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입니다.
성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매우 능동적으로 활동합니다(계3:11, 22:7,12,20).
악인들에 대한 심판 역시 그렇습니다(계2:16).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그러므로 재림의 날과 때(시간)를 아들도 모른다와 아버지만 아신다는 의미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권한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1:7)
우리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계시록에 대해 무관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계시록을 알고 나면 어떤 사건과(대 환난) 어떤 재앙들(여섯째 나팔) 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런 것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특정 이단들은 재림의 날을 정확하게 예언했다가 망신을 당했습니다.
특정한 날을 재림이라 예언하여 교회와 사회에 큰 해악을 끼쳤습니다.
그 결과 계시록에 대한 연구의 침체를 가져왔고, 재림에 대한 무관심을 일으켰습니다.
사탄의 전략에 휘말린 것입니다.
우리는 재림의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모르지만 징조들을 통해 잘 대비할 수 있으니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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