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길성 교수는 총신대학원 교수직은 은퇴한 후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총신과 장로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진리수호의 파수꾼입니다.
전통을 중시하고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표방합니다.
- 목 차 -
1. 들어가는 글
2. 행위 언약의 용어 정리
3. 행위 언약의 비판 또는 반대하는 주장들
4. 행위 언약과 관련된 성경의 증언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행위 언약에 대한 논의
6. 나가는글
저자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의 구분점을 타락으로 봅니다.
죄인에게 베푸는 언약을 은혜 언약으로, 타락 전 무흠 상태의 언약을 행위 언약으로 나눕니다.
"역사 속에서 죄인을 위한 구속 사역인 은혜 언약은 '타락'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은혜는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호의이기 때문이다."
(신학지남, 2024년 겨울호, p. 149)
"은혜 언약은 타락 전에 수립되었으나, 타락에 의해 파기된 행위 언약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p. 152)
저자는 바빙크의 견해와 뜻을 같이 합니다.
"바빙크는 은혜 언약은 타락에 의해 파기된 행위 언약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행위 언약은 아담 안에서 인류와 맺은 언약이며, 은혜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와 맺은
언약이다."(p.155)
저자는 "타락 이전 아담의 원 상태"가 어떤 것인지 살펴봅니다.
행위 언약을 받을 당시 아담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은혜 언약과의 차이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박형룡 박사의 4가지 하나님의 형상(창1:26-28)을 인용합니다(p. 165).
(1) 인격 혹은 영혼에서 : 사람이 지닌 영성, 단순성, 불가견성, 불사성과 지, 정, 의의 기능들과,
자의식 및 자결정의 권능들에서 자연적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제시한다.
(2) 원의(Original rightousness)에서 : 참된 지식, 의, 거룩을 나타낸 그 본성과 지성적, 도덕적
완전에서 도덕적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제시한다.
(3) 신체에서 : 사람의 신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제시한다.
(4) 지상 주권관에서 : 사람의 지상 주권관에서 권위적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제시한다.
이런 관점은 타당하게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결함이 있습니다.
아담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었다는 것과 성령이 내주한 상태로 존재했다는 것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생을 누리고 있었고,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전제가 생략된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만 먹지 않는 것으로 언약을 맺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좁은 관점입니다.
선악과와 함께 곁에 있던 생명나무 실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창2:9, 3:22).
지속적으로 영생하기 위해서는 생명나무 실과를 먹어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과를 통해 본 아담 언약은 아담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고백하고,
성령을 따라 살 것을 맺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언약을 거부한 것이 첫 사람 아담의 죄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창조된 상태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류이 대표성을 지녔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 없는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아담 역시 무죄 상태로 태어난 것도 서로 동일한 조건이 됩니다.
또 하나 예수님은 죄 없는 상태로 태어났기에 처음부터 성령이 내주하였습니다.
아담 역시 자연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 성령이 내주하였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됩니다.
이런 더 근본적인 조건이 누락된 채 토론이 되는 것은 정답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저자는 애매한 단어들로 표현합니다.
'적극적인 거룩한 상태' 혹은 '원래적인 거룩한 상태'라는 모호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타락 이전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아담의 순종 행위를 요구하는 금지 명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무죄 상태요, 적극적인 거룩의 상태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존재였고,
또한 ..."(p. 167)
"...사람이 원래적인 거룩한 상태에서 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어떤 암시도 없고,
또한 실제로 먹었다는 기록도 성경에는 없다."
오늘날 행위 언약이라는 용어가 문제가 되는 것은 행위 구원처럼 행위라는 말 자체가 은혜가
배제된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어라는 측면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타락 전 아담과 맺은 언약 자체가 은혜가 수반된 상태였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 밖 흙에서 지음을 받았고, 그 후 에덴 동산으로 들어갔습니다(창2:8, 15, 19
3:23).
에덴 동산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흙에서 지음을 받은 아담에게는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서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했습니다(창3:8).
에덴 동산은 하늘의 예루살렘 성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예배하는 곳입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의식을 통해서 아담은 자신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은 하와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족하지
못하게 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이 되라고 미혹합니다(창3:5).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을 때 아담의 상태는 전적인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은혜는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이후에 등장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행위언약이라 칭할 때 은혜언약과 대조됨으로써 은혜를 거부하게 만들 수 있기에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행위 구원 역시 그렇습니다. 은혜 구원과 대조되어서 인간의 힘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노력으로
사용되면 오해가 많이 발생합니다. 성도의 성화는 전적으로 성령의 내주와 역사하시는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했던 것들을 행위 구원이라고 하면 문제가 됩니다.
저자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시점도 다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워필드의 견해를 따라 세 가지 의를 제시하면서 아담이 후손들에게 죄를 전가함과,
그리스도의 백성의 죄가 구속주에게 전가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그의 백성
에게 전가됨을 이야기 합니다(p. 181).
"믿는 자의 칭의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로부터 발생한다...
이 의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p. 180)
이런 주장은 이방인 성도들에게는 맞는 말입니다만 구약성도들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구약시대에 의가 전가되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의인이 되지 못합니다.
원죄에 대한 소요리문답의 정의도 다소 아쉽습니다.
"아담의 첫 범죄에 유죄한 것과 근본 의가 없는 것과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인데 이것은 보통으로
원죄라고 한다"(p. 187)
무엇이 원죄이며, 아담의 후손들이 원죄 상태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간결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원래 어떤 상태였고, 죄로 인하여 그것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고 쉽게 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창조된 아담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한 상태였습니다.
아담이 언약을 깨뜨리자 아담은 그리스도 밖에 있게 되었고, 성령이 떠났습니다.
이 상태로 아담의 후손들이 잉태되는 것을 원죄라고 하며, 그 결과 전적인 부패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원죄를 설명하면서도 결국 아담이 지음을 받았을 때 큰 은혜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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