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더스(E.P. Sanders)의 "언약적 율법주의"에 대한 재고(再考) -
이 논문은 총신대학원에서 신약신학을 가르치는 조호형 교수가 쓴 글입니다.
(신학지남, 2023년 봄호)
목 차
1. 서론 및 문제 제기
2. 샌더스 이전 상황
3. 샌더스의 등장과 그의 주장
4. 샌더스 이후의 상황
5. 샌더스의 주장에 대한 재고
6. 결론
예수님과 바울이 활동했던 1세기의 유대인들의 율법관을 이해해야만 신약성경의
복음서나 바울서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샌더스가 1977년에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나타난 '새 관점'입니다(p. 69).
<언약적 율법주의>입니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2. 그리고 율법을 주셨다.
3. 이 율법은 이 선택을 유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를 암시한다.
4. 하나님은 순종에 보상하시고 범죄를 처벌하신다.
5. 율법은 속죄 수단을 제공하며, 속죄는 결국 언약 관계 유지 혹은 언약 관계
재수립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6. 순종과 속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언약 안에 남아 있게 된 모든 이는
장차 구원 받을 그룹에 속해 있다.
...결국 구원은 인간이 이룩하는 일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샌더스는 이전의 관점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그럼 샌더스 이전의 유대인들의 율법관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유대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하여 율법을 행한다는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가졌다"(p. 68)
"유대교는 율법주의 종교이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p. 71)
"실제로 샌더스 이전까지만 해도, 신약시대의 유대교는 구약에 나타난 언약의 개념이 상실되고,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될 정도로 율법이 그 언약의 개념을 대체했다는 주장이
대세인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즉 1세기 유대교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성취하는 종교로
이해했던 상황에서 샌더스는 언약이라는 틀 안에 율법을 행하는 문제를 포함함으로써,
구원의 궁극적인 원인이 언약 즉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였다. "(p. 78)
샌더스 이후에는 어떤 주장들이 나왔을까요?
샌더스의 의견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소 보완하기도 합니다.
제임스 던이나 톰 라이트는 샌더스의 패러다임 전이를 "새 관점"이라 명명합니다(p. 71).
두 사람은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p. 76).
"이들은 바울의 부정적인 진술에서 언급된 율법은 전체 율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나타낸 표지인 할례와 음식법 및 안식일이었다고 주장한다."(p. 77)
유대교를 이해함에 있어서 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이 거듭났다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 율법을 논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복음서나 구약성경을 이해함에서 결정적인 기준이 됩니다.
또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논함과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말하는 것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에게 바울이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갖기 전의 율법의 부정적인 역할과
유대인들이 성령을 따라 율법을 행하지 않음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것의
구분을 알지 못합니다.
열정을 가지고 연구하는 많은 것들이 허공을 치듯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많은 학자들이 놓친 부분을 우리도 반복한다면 정답없는 불필요한 과정만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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