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지남 2022년 겨울호(통권 353권)에 실린 김대훈 교수의 논문입니다.
김상훈, 이상웅 교수에 이어서 또 다른 교수가 요한계시록을 다루어서 매우 흥미롭고,
계시록에서 매우 어려운 16장을 논하기에 관심을 증폭시킵니다.
특이하게도 석의의 출발이 기본과 다릅니다.
문학적 → 역사적 → 신학적 접근을 따릅니다.
개혁주의적인 기본에서 조금 이탈했습니다.
(문법적 → 역사적 → 신학적 접근)
최근 계시록을 다룸에 있어서 '문학적' 접근을 선호하는데 역시 그런 흐름이 감지 됩니다.
문학적 접근으로 전체적인 틀을 세워서 해석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조금 싱겁게도 서론에서 결론을 드러냅니다.
"처음 다섯 가지 재앙(계16:2-11)은 예수의 초림(또는 승천)과 재림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을
포괄한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재앙(계16:12-16, 17-21)은 역사의 끝에 일어날 사건들로 종말의 전쟁과
최후심판을 묘사한다."(p. 61)
저자 김대훈 교수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모든 것이 상징으로 귀결됩니다.
둘째 대접 재앙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보면,
*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계16:3)
저자는 바다를 실질적인 바다로 보면서도 경제의 중심지로 해석합니다.
특이한 것은 죽임을 당한 '모든 생물'을 프쉬케라는 단어로 인하여 사람들로 한정합니다.
"모든 생명체의 '프쉬케'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다(G.K Beale의 견해를 빌려).
바다가 시체의 피처럼 된 것은 바다에 기반을 둔 인간의 죽음이었음을 의미한다."(p. 72)
다른 번역본들은 '모든 생물'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과연 사람으로 번역한 곳이 있을까요?
① 모든 생물 - 흠정역을 제외한 모든 한글 번역본
② 살아 있는 혼 - KJV
③ every living thing in the sea - NIV, NASB
④ every living soul in the sea - KJV, Darby, YLT, ASV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라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만일 사람이라면 전치사 in 으로 사용하지 않고, on 을 사용함이 맞습니다.
바다 안에 거하는 곧 물 속에 거하는 피조물들의 죽음이라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저자가 계속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1-5대접 재앙이 초림부터 재림 사이에 내린
것으로 추정하기에 바다의 완전한 죽음을 부정하고, 부분적이거나 상징적인 재앙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재앙들을 애굽의 열 가지 재앙들과 연관시킵니다.
하지만 나일강의 새명체가 죽었다는 것에서는 사람의 죽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자 강의 물고기가 죽었다."(p. 72)
세번째 대접 재앙을 언급하면서는 강물이 피로 변하자 어떤 사람들도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바닷물이 피로 변했던 것과 바다 위 곧 배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피로 변해서 피해를 본 생명체가 물고기들과 바다 식물들이지
결코 사람은 아닙니다.
"계시록 16장의 대접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이고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 의미다.
...대접을 쏟는 행위와 "짐승의 표"가 상징임을 고려하면, 독하고 악한 종기도 상징적인
표현이다."(p. 70)
저자의 대접 재앙에 대한 접근과 이해는 혼란스럽습니다.
상징이라 하면서도 문자적 해석을 깔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까지 문자이며, 어디서부터
상징인지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저자는 6-7대접 재앙은 최후심판으로 봅니다.
6대접은 전쟁을 통하여, 7대접 심판은 우주적 변동을 통한 최후심판입니다.
역시 이곳도 상징으로 보는 관점이 강합니다.
바벨론을 로마제국으로, 유브라데나 므깃도 역시 상징으로 봅니다.
음녀 또한 멸망받을 로마제국으로 생각합니다.
* 바벨론 = 로마제국 = 음녀
저자의 계시록 16장의 일곱 대접 재앙 해석은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일곱 대접 재앙들을 초림부터 재림 사이에 일어날 사건들로 배치하면서 미로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프레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해석을 계속해서 펼쳐야 했고, 그 결과 나머지 것들을
상징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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