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신학지남 2020년 겨울호에 조호형 교수가 쓴 글입니다.
목 차
1. 서론 및 문제 제기
2. 갈라디아서 안에서 율법에 대한 바울의 부정적인 진술
3. 갈라디아서 안에서 율법에 대한 바울의 긍정적인 진술
4. 율법에 대한 부정과 긍정적인 진술의 양립
5. 결론
이 논문은 약 20페이지 분량으로 매우 짧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율법(노모스 - 32회)이란 단어를 통해 몇 부분으로 나눕니다.
1) 율법(노모스)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구절 - 갈1:1-2:15절
2) 율법이 집중된 구절 - 갈2:16-5:12절
- 부정적인 진술(26회) - 성취의 관점에서(음식법, 절기법, 할례, 의롭게 됨)
3) 율법이란 단어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절 - 갈5:13-6:18
- 긍정적인 진술(갈5:14) -윤리적인 차원에서 긍정
- 양립되는 진술
평가
바울신학을 통해 본 율법 이해는 오랜 시간 논쟁이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그 주된 이유를 보면 이렇습니다.
1)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것과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미치는 영향을
구분하지 않고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봅니다.
지금까지 신학계는 구약 이스라엘이 거듭났고, 성령이 내주했다는 관점이 없기에
율법을 받음이 이방인들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구약시대 율법이 이방인들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롭게 되었고, 성령이 내주하였기에 율법을
받음이 정죄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회개를 통한 회복을 위해
주셨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2) 구약을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언약이 서로 상반된 것으로 분리함입니다.
거듭나서 의롭게 되고, 성령이 내주한 이스라엘에게 아브라함의 언약은 칭의를
보게 했고(할례), 모세 언약(시내산 언약)은 칭의된 이스라엘에게 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율법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위의 논문도 역시 이런 범주의 정리가 없이 곧바로 갈라디아서로 들어갔기에 혼동이 일어났고,
제대로 마무리를 못한 채 끝을 맺습니다.
저자는 율법 아래에 있었던 시기를 이방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까지 포함시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를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 율법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고
결정합니다.
*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5:18)
구약 성도들인 이스라엘이 이미 성령 안에 있었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는 바울 서신뿐만 아니라 복음서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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