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신학지남(1997년 여름호)에 박용규 교수님이 쓰신 짧은 글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대들은 그를 벙어리 황소라 부르지만 내가 말하건대, 그 벙어리 황소가
장차 큰 소리로 울어, 그의 울음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다."
(1248년, Albertus Magnus)
1. 서론
토마스가 계시(성경)와 이성과 전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했는가를 연구한다.
2. 토마스의 생애 (1225-1274)
나폴리 대학에서 4년 동안 교양 과목을 배웠으며 거기서 1244년 도미닉 수도회에
가입했다. 1245년부터 1248년까지 성 야고보 수도원에서 도미니파 수도사이자
영향력이 대단히 높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옹호자였던 대 알버트 아래서 공부했다.
또 4년간 쾰른으로 가서 알버트에게서 더 배웠다.
그 후 1252년 파리 대학으로 돌아와 2년 간은 성경을, 2년 간은 피터 롬바르트의
문장론을 강의하였다. 49년이란 짧은 생애에 90여개의 작품을 썼다.
특히 두 개의 작품 즉 이교도대전(1261-1264)과 신학대전(1265-1273)을 썼다.
토마스에 대한 인격적 평가는 온유함, 놀라운 평정, 인내, 다함 없는 정신적 에너지,
철두철미함, 일편단심 등이 있다. 그의 제자 Reginald는 그의 스승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학문은 지성적 노력에서 나왔다기보다 기도의 힘에서 우러나왔던 것이다."(p.169)
토마스는 동시에 네명의 서기에게 4가지 다른 주제를 불러주어 받아쓰게 할 정도였다.
3. 토마스 아퀴나스의 계시와 이성
철학과 신학은 동일한 것들을 알 수 있지만 이는 상이한 시각을 표출한다.
양자 사이에 필연적 투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가 어느 하나를 배제하지 않는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을, 각자의 기원, 필요성, 권위라는 관점에서 명백하게 구분하면서도
양자의 적법한 상관성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마스는 신성한 교리가 오로지 성경에
기록된 신적 계시 위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철학의 이성적 탐구를 이용해 신성한 교리를 뒷받침하였다."(p. 176)
4.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과 전통
그가 권위를 부여하는 정경(성령)과 더불어 교회 전통 또한 막강한 영향 아래 있었다.
"교회의 관습은 대단히 큰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서 이것이 준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카톨릭 교부들의 교리 자체는 교회로부터 그 권위가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우리는 어거스틴이나 제롬 혹은 기타 어떤 교부의 권위보다는 교회의
권위에 따라야 한다."(p. 180-181)
그 결과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성상에 대한 숭배를 찬성했고, 마리아에 대한 것들도
정경에 의존하지 못하고 전통을 따르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가 태에서부터 성화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정경은 아무 내용도 전해주지 않는다.
아니 정경은 마리아의 탄생조차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동정녀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논문에서 그녀의 승천에 관해 펼친 주장은 타당하였듯이(성경이 이것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몸은 하늘로 승천하였다) 그녀가 태에서부터 성화되었다는 논증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p. 181)
이런 일들을 보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을 사랑한 학자였지만 종교개혁을 이끌만한
자질은 보여지지 않습니다. 루터나 칼빈처럼 오직 성경만을 고수하지 못했기에 그의 한계가
뚜렷하게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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