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성경 이모저모

8. 칼빈의 생각 읽기 – 구약 성도들의 구원

오은환 2013. 9. 29. 18:44

 

신학의 대가로서 칼빈의 생각을 나누는 것은 매우 유익하게 보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 중생의 역사가 있었을까요?

즉 성령의 역사로 그들은 거듭났습니까,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거듭났습니까?

칼빈은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칼빈)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즉 이전에 중생한 교부들(구약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 은혜를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다른 근원으로부터 그들에게 이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은 율법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음으로부터 율법으로 이전된 은혜였다"(계약신학과 그리스도, 팔러 로벗슨 저, 김의원 역. p.298)

 

저는 칼빈이 내린 결론을 읽으면서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예표로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의 효과가 없는가?

구약 성경에서 율법 이외의 성령을 보지 못했는가?

구약성경은 복음이 아니었는가? 구약 이스라엘이 받은 말씀은 복음이 아니었던가?

칼빈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떻게 구약성도들에게 이전되었는가?

그 방법은 무엇인가?

 

구약성도들의 중생에 대한 것이 성령이 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연설명이 더 어렵습니다.

신약성도들은 성령을 통해 거듭남(중생)이 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구약성도들은 근원이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복음으로부터 율법으로 이전된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기대 속에서만이 옛 계약의 희미한 형태가 새 계약의 능력 있는 실재에 참여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p. 299)

 

구약 성도들은 "기대 속에서" 참여가 가능하다고 보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칼빈에게 질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기대는 누가 구약성도들에게 부어주는 것일까요?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까?

만일 여기에 대해 <>라고 한다면 그 순간 그의 전제(전적타락)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다시금 질문을 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성령"은 구약성도들에게 무슨 일들을 하셨는가요?

구약 성도들에게 성령을 빼 버리면, 그들의 중생(거듭남), 회개, 믿음, 성화, 영화에 대한 아무런 답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신구약을 전혀 다른 성경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요?

 

구약 백성들의 <풍성한 행복함>에 대해 그 근원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른 채 우리와 전혀 다른 <무거운 율법을 짐지고 가는 성도>

만들고 맙니다.

 

*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 하리이다(5:7)

* <이스라엘> 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 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33:29)

 

왜 구약성도들을 행복한 사람,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이라 표현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