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는 복음서와 매우 유사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뜻보면 바울과는 달리 야고보와 매우 유사하게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결과 임한 성령의 성전되심,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된 자들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기본을 발견하는 것을 못해서 오랫동안 논란 속에 휘말렸다고 봅니다.
복음서 역시 하나님의 나라가 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미 옛 언약 아래서 이스라엘이 구속과 성령의 내주를 경험함을 기본으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함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이것을 발견 못한다면 복음서에도 역시 못합니다.
즉 복음을 복음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발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된 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 ...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2:5)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됨은 그분의 통치 아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람들을 통해, 혹은 교회나 성전을 통해 통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직접 다스리길 원하십니다.
그분의 영인 성령을 통해 행하십니다.
복음서나 야고보서는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것도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동일하다고 증거합니다.
*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구약성경 인용)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4:5)
복음서나 야고보서는 동일한 전제 아래 기록되었습니다.
옛 언약 아래서 이미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음을 전제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거룩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복음서 역시 예수님이 요구한 열매는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지 않았다면 뜬금없는 소리에 불과할 것이지만, 이미 내주하기에 반드시 성령의 열매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바울서신은 주로 이방인들에게 보내졌기에
<서신 전반부>는 가장 기본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항상 강조합니다.
그결과 <서신 후반부>에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서 거룩한 삶>을 강조합니다.
바울서신이나 야고보나 복음서나 근원적으로는 모두 같습니다.
혹자는 야고보서가 대환난 때에 유익한 서신이라 말을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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