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그 의미들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를 물로 규정했고, 오순절 이후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부분입니다.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세례 요한은 이 부분을 어떻게 묘사할까요?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3:11)
1. 왜 요한은 세례를 베풀었는가?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에 대한 이유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첫째는 곧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
*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1-2)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못한 자들로 하여금 정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정결함 곧 죄사함을 받기 위해 세례를 베풉니다(마3:11).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메시아가 오셔서 이 땅에 드러날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메시아가 직접 세상을 다스리는 가시적인 나라를 꿈 꾼것은 요한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재림 때처럼 왕으로 다스릴 나라입니다.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는 왜 제사를 드려서 죄사함을 받으라 하지 않았을까요?
구약의 어느 선지자도 행하지 않았던 세례를 공식적으로 베푸는 것일까요?
왜 백성들은 이런 세례 요한의 행동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까요?
도리어 백성들은 그가 메시아가 아닌지 묻습니다.
2. 예수께서 베풀 성령 세례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에 대해 그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봅니다.
메시아의 오심을 예비하는 자로서 물 세례는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물 세례가 아닌 성령으로 세례를 줍니다.
메시아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 증거로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풀 성령 세례는 오순절 날 임할 성령입니다.
*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행1:4)
3. 물 세례와 성령 세례 비교
세례가 유효한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속죄)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 세례든 성령 세례든 모두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해서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요한의 물 세례를 받은 자들은 다시 속죄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속죄 제물을 드렸다면 세례는 불필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물 세례가 속죄 제물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두 개를 동시에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물 세례는 그 자체로 끝났을까요?
물 세례의 효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의 회복입니다.
성령 세례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요?
먼저 성령 세례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구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구속주로서 희생 제물이 되었기에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보낼 성령을 수여 받았습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동물의 제사와 연관하여 일체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한 속제 제사와 일체로 움직입니다.
즉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십자가의 속죄 제사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고, 단회적으로 일어나야할 사건임을
잘 표상한 것입니다.
요한의 물 세례나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모두 구속과 성령의 내주가 있었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다만 아버지의 성령에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낸 성령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구속사에서 큰 획이 그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은 더 이상 구약 제사의 반복이 불필요함을 제시합니다.
구약 제사를 번제단에서 드린 후 제사장은 반드시 물두멍에서 물로 그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구속사역이 완전히 끝난 후 비로소 성막(성령)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구약 요약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요3:3,5).
물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표하는 물두멍의 역할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물은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행하는 모든 것을 함축합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구속과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거듭남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다만 그 방법에서 구약은 물로서 씻음은 반복되는 제사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 이후로는 성령 세례를 베푸는 것으로 더 이상 반복되는 예수님의 죽으심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6. 난해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삭개오는 언제 구원 받았나? (0) | 2016.02.20 |
---|---|
니고데모는 거듭났는가? (0) | 2016.02.14 |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의 연관성 (0) | 2016.02.11 |
안식교의 예언 이해 (1) | 2016.02.01 |
역사주의적 해석법의 한계 (0) | 2016.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