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는 마태, 마가와는 달리 종말을 예루살렘이 군대에 휩싸인 것에서 출발합니다.
예루살렘을 애워싼 군대들을 보면서 그것이 종말의 신호로 기술합니다.
*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애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눅21:20,23)
많은 주석가들은 누가복음을 통해 마태와 마가복음을 해석하려 합니다.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AD 70 년 티도 장군의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누가가 기술한 종말의 신호로서 예루살렘의 멸망 징조들은 종말에 나타날 대 환난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대 환난 자체는 아닙니다.
누가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종말의 징조와 유사하게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처절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것 같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가장 유사한 사건을 통해 최종적인 사건을 이해시키려 합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가장 처절한 대 환난을 예루살렘 멸망 상황에 빗대어 설명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곧 재림의 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긴 시간의 공백>이 있을 것을 알려줍니다.
*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21:24)
성도가 받는 대 환난의 처절함은 말이나 글로 기술하기 어렵습니다.
창세 이래로 한 번도 없었던 환난의 깊이를 누가 느낄수 있겠습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의 구원이 채워질 때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의 충만함도 완성되어 집니다(롬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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