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를 행하며 흘리는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떠오르게 합니다.
할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일단 접어두어야 합니다.
신약에서도 좋은 제도들이 중세시대에는 크게 부패한 도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세례, 성찬, 예배 뿐만 아니라 여러 성례들을 만들어내 돈벌이 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나쁜 영향들로 인하여 좋은 것을 버리면 안됩니다.
할례에는 깊은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1. 육체의 할례
육체의 할례는 종종 부정적인 생각들로 연결되곤 합니다.
세례 요한도 얼마나 화가 났으면 주변의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수 있다고 말합니다.
할례는 좋은 제도이지만 이스라엘은 그 특권만 믿고 회개하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어떤 자들은 구약은 육체적 할례만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약은 이스라엘로 마음의 할례가 없으면 그 할례가 무익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까지도 마음의 할례가 없으면 성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2. 마음의 할례
바울 역시 할례를 유대인들의 완고함과 연결시킵니다. .
표면적 유대인의 표징으로 할례를 사용합니다(롬2:28-29).
마음의 할례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의롭게 됨을 인치신 것이 할례입니다(롬4:11).
육체적 할례가 있기 전 먼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죄사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았습니다.
다윗의 말을 빌어 아브라함을 증거합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리움을 받음은 아브라함의 어떤 행동에서 기인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일도 안했지만 하나님께 의롭게 여김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사29:22)
아브라함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신 근거는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을 받습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마음의 할례를 받았다는 말은 성령이 내주하시며 힘 주심을 의미합니다(롬5:5).
3. 귀의 할례
특이하게 할례를 표피를 베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특정한 부위에 할례를 행할 것을 주문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렘6:10)
스데반은 귀가 할례를 받아야 함을 말합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7:51)
이 말은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없이는 아무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듣지 못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깨닫는 행복을 많이 간구합니다.
*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시119:27)
신체에서 귀가 찾이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특별히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일에 귀만큼 중요한 부위가 없습니다.
귀는 성령의 어루만지심이 필요한 곳입니다.
*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1:15, 13:9,43, 막4:9,23, 눅8:8, 14:35)
귀의 할례는 성령의 열어주심입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11,17,29, 3:6,13,22)
4. 할례와 구속 그리고 성령의 내주
할례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합니다.
할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아 의롭게 하며, 성령이 내주하셔서 거룩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할례 속에서 구속과 성령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할례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지 못한 자들이 전하는 할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무지함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지함은 도를 넘어 자신들이야말로 열정적인 할례파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진정한 할례파로 분류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은 할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성령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육체적 할례)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3:3)
할례를 가장 잘 이해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할례 속에서 예수님과 성령님을 보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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