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는 <이신득의> 교리로 모든 것을 보려합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매우 기본적인 교리입니다.
당연한 것이 왜 이처럼 소중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중세 카톨릭의 부패함 때문일 것입니다.
이신득의 교리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어찌보면 성도의 거듭남과 구원의 시작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합니다(살전5:16-18).
구체적인 것을 넘어 큰 틀에서 하나님의 뜻은 <성도의 거룩함>입니다.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성도의 거룩함은 어디서 올까요?
근원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를 전가받음으로 입니다.
그 결과 성령이 성도들 안에 내주함으로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고전3:16, 고후6:16, 약4:5).
성령의 내주하심이 곧 거룩함의 절정입니다.
성도는 거룩하기에 또한 거룩한 행실이 나와야 합니다(갈5:16, 22-23, 25).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거룩함이라 주저함 없이 말합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있어서 거룩함이 훼손될 수 있을까요?
계속해서 바울은 성도가 <거룩함을 저버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 그러므로 (거룩함을)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라(살전4:8)
'저버리다'는 동사 '아데테오'는 거부하다, 폐하다, 깨뜨리다, 업신여기다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내주했다 하더라도 거룩함을 훼손시키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훼손하는 자들이 구원에 이른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주장이 됩니다.
광야에서 주를 시험했던 많은 자들과 초대교회의 영지주의로 빠졌던 자들이 바로 이런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촛대가 옮겨진 자들이며(계2:5), 흰 옷을 더럽혔으며, 생명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계3:4-5).
성령과 성부 하나님 혹은 성령과 성자 예수님은 한 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성령을 저버림은 곧 성령을 보내신 성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누군가 성령을 저버림은 곧 성령을 보내신 성자 예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혹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말은 곧 그 분이 보내신 성령께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내주해야만 구원을 개인적으로 적용하여 효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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