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히브리서는 모순이 없다

오은환 2016. 8. 28. 22:34

계속해서 논쟁의 근원은 히브리서에 대한 오해 때문 같습니다.

오해 없이 성경을 읽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1. 히브리서 구약은 복음이다.


히브리서는 구약을 가장 잘 설명하고 인용하기에

우리들로서는 좋은 교재와 같습니다.

히브리 기자의 이야기는 구약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을 이스라엘로 묘사합니다.

그 복음은 영생을 제공하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 그들과(출애굽 세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히4:2)

 ★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 출애굽 세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4:6)


2. 예표가 상징하는 것 복음


구약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신약과 동일한 메시아의 구속입니다.

구속을 담은 그릇이 바로 예표입니다.


실체는 하나이지만 예표는 여럿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구약 백성들의 구속은 어디서 발생할까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물론 아브라함 이전 사람들 역시 동일한 믿음입니다만

이스라엘을 통해서 더 구체적인 역사가 이루어지기에 그 부분으로 한정해서 다룹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어 구속함을 받았고(사29:22) 의롭게(창15:6) 되었나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받은 것을 믿었습니다(롬4:6-8).

다윗과 이스라엘 역시 동일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언제 구속에 참여합니까?

태어나서 팔 일만에 할례에 참여함으로 이런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곧 아브라함의 복입니다(창12:3)

이방인들은 오순절 이후 아브라함의 복에 동참합니다(갈3:14).


어찌보면 속제 제사보다도 할례를 더 먼저 다루어야 합니다.

그 후에 따라오는 속제 제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함과 같습니다.

오늘날 성찬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그 약속이 효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당연히 성취되겠지요, 하나님은 실언하지 않는 분이지 않습니까?)


3. 모순인가? 오해인가?

히브리서에서 가장 큰 오해 부분을 세밀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1) 능히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결함인가? 반복인가?


 ★ 그러나 그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예표의 특징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3-4)


히브리서 10장은 예표와 실체의 차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의미로 10:1절은 이렇습니다. 

 *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10:1)


위의 두 구절을 비교해보면,

 * 예표는 실체의 그림자이기에 실체(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반복되어야 한다. 

 * 예표는 단 한 번에 완전하게 할 수 없다.

 * 예표는 한 번 드림으로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다(반복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드리는 것이 결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능히>는 <언제나>와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온전하게 하지만 반복됨을 의미합니다.   


 2) 예표로서 제사는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한다 


 *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히9:13)


위의 구절과 10:3-4절은 모순입니까?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두 언약을 비교합니다.

예표는 반복되고 실체는 단 한번으로 정결하고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4. 동물제사가 없으면 어떻게 구원에 참여하는가?


예표로서 동물제사가 없던 시절이 있습니다.

드리고 싶어도 성전이 없어서 못드린 역사가 몇 번 있었습니다.



 1) 바벨론 포로

약 70 년 동안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 죄 사함과 정결케 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두 지옥에 갔을까요?


에스겔 성전은 포로기에 주어졌습니다.

건축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고, 지키라 했습니다(겔43:10-11).

비록 동물제사가 없더라도 예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 * ...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에 생각할지어다...(겔40:4)


 2) 안티오크 에피파네스 4세(2,300 일)

북방왕과 남방왕 사이에 여러 번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시리아의 에피파네스 4세는 2,300 일간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제사를 금지시켰습니다(단8:14).


이 기간의 이스라엘은 어떻게 정결함과 거룩함을 유지했을까요?

동물제사의 결함여부를 떠나 존재자체가 없다면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예표는 실체에 대한 믿음을 전달해주는 측면에서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표는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생각함으로도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


어떤 주장이 올바른 방향일까요?


구약은 복음도 아니고, 완전한 속죄, 구원이 아니며,

성령도 없고, 사랑하라는 옛 계명은 오순절 이후에 주어진다는 견해가

구약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일까요?


아니면 구약을 구속사로 보면서 성령이 내주함으로 구속사가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 나쁜 방법입니까?

성령이 내주해야 장차 올 실체되신 메시아를 바라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성령을 따라 신앙생활 해야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영생에 참여하게 하는 근원이란 연구가 잘못된 것일까요?


어느 것이 더 성경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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