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의학 책을 저술했던 헤르만 바빙크의 중생 이해입니다.
"중생의 여부는 그 사람이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회개하는 것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신학지남, 2013년 겨울호, p.160)
중생의 증거를 찾는데 있어서 신앙고백을 근거로 삼습니다.
그러면 유아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에 대해 바빙크는 언약신학으로 돌려 생각합니다.
유아들이 중생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언약신학'에 근거해서 구원을 받는 것으로 봅니다.
"유아의 경우 세례 및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의한 중생의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언약에 있는 것이며..."(p.162)
바빙크의 위험성은 이렇습니다.
유아세례나 유아의 구원은 단지 은혜 언약을 맺었기에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유아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단지 은혜 언약 안에 있기에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되었습니다.
유아들이 부르는 찬양과 드려지는 예배 그리고 교제가 하나님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아들은 구속을 단지 선언적인 의미로 받았고,
실질적으로는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지 않음으로 중생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의미라면 유아들이 어떻게 찬양하며,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도무지 설명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히리라 하시니라(눅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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