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난 것은 우연일까요?
두 사람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깊은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창14:19)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상황을 보며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축복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인이 종에게 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히7:6,7)
아브라함을 크게 보는 것은 그를 통해 복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창12:1-3).
그 복은 바로 생명을 제공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갈3:14).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아직 메시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받은 자'로 표기합니다.
그러면 멜기세덱은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보다 왜 더 크다고 표현할까요?
멜기세덱은 약속을 받은 자가 아니라 '약속 그 자체'를 반영하기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드렸던 제사제도는 모형으로서 실체가 오면 반드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체를 드러냈던 멜기세덱의 제사장되심은 실체가 올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히7:12)
*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히7:18)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히7:24)
특이한 것은 멜기세덱의 제사장의 특징과 레위 지파의 제사드림이 가끔은 일치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물로 드려진 성전제사가 멈췄을 때 이스라엘은 더 이상 동물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포로 70(BC 586-516)년의 기간과 헬라제국의 에피파네스 4세가 이스라엘 성전을 더럽힌 기간(BC 167년)이 그렇습니다.
성전과 제물이 없이 드려지는 예배를 구약에서 상상해야 합니다.
그것이 멜기세덱 제사장이 행했던 예배로 보입니다.
성막(성전)은 멜기세덱으로부터 500 년이 지난 후에 지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기나 억압기에 성전제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더 견고했습니다.
모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는 실체와 모형의 예배가 공존했다고 보아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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