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히브리서

<능히>?

오은환 2017. 4. 6. 17:25

성경번역에서 익숙하지 않는 용어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때로는 많은 오해들을 불러 일으킵니다.

같은 문맥에서 하나의 원어를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 '오직'(알라 - 그러나, 반면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계시록 2,3장에는 몇 번이나 같은 단어(알라)가 반복됩니다만 모두 '그러나'로 번역되었습니다.

유독 계2:6절만 '오직'으로 번역되어 큰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오직'으로 번역되어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을 잃은 반면, '유일하게 잘한 것'(?)이 니골라 당이라 불리는

영지주의자들과의 싸움뿐으로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러나로 번역되었다면 에베소 교회가 진리를 위해 이단 영지주의와 싸웠다고 칭찬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역시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은 '능히'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4)

 

글자 그대로 읽으면 구약 백성들이 드린 동물의 피 제사가 죄를 없애려고 애썼지만 백 퍼센트까지는

정결하게 하지 못한다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능히 - 능력이 있어서 쉽게, easily - 는 인간의 노력에 근거한 애씀으로 느껴집니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표준새번역을 보십시요.

*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 줄수는 없습니다(히10:4)

 

공동번역 역시 잘 되어 있습니다.

* 황소와 염소의 피로써는 죄를 없앨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히10:4)

 

더 실감나는 것은 KJV흠정역입니다.

*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니라(히10:4)  

* For it is not possible that the blood of bulls and of goats should take away sins

 

어떻습니까? 전혀 어감이 다르지요?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죄를 제거함이 불가능하다고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능히>를 사용함으로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은 죄를 제거하려고 시도하지만

백 퍼센트까지는 제거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오지요?

 

그러면 원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능히>라고 번역되었던 단어는 <아두나톤>으로 불가능한, 할 수 없는, 못하는, 무력한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가에 대한 물음에 예수님이 답변한 곳에서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아두나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만일 '할 수 없으나' 대신 '능히 못하나'로 번역한다면 큰 일 나겠지요?

원문에 가장 충실하게 번역한 로고스 성경은 <능히>를 이렇게 표기합니다.

* it is impossible for blood of bulls and goats to take away sins(히10:4)

 

그러면 히10:4절에서 동물제사는 왜 죄를 제거하지 못하면서 드려져야 합니까?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성경에 모순이 존재할까요?

 

*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히9:13)

 

히브리서 10:4절은 동물의 피로 죄 사함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히9:13절은 육체만이라도 정결과 거룩한

효력을 발생한다면 모순이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형으로 드려지는 동물제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동물제사는 반복되어 드려짐으로 죄를 생각나게 하기에 양심의 완전한 자유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지,

죄 사함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반면에 예수님 자신을 드린 제사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죄 사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를 생각나게 하지 않음으로 양심의 자유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동물이나 예수님의 피나 모두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동물의 피가 곧 예수님을 예표하기에 죄 사함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앞뒤 문맥을 통해 명백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넘어집니다.

구약을 보지 않으려고 하고 어렵다고 합니다.

전혀 다른 잘못된 결론에 도달해서 구약을 복음으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원문과 다른 번역본들을 참고해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16. 히브리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과 약속  (0) 2017.04.07
히브리서 11장으로 구약 보기  (0) 2017.04.07
모형 vs 실체  (0) 2017.04.06
죄 사함 - 육체 vs 양심  (6) 2017.04.06
구원의 유효와 상실의 범주  (0) 2017.04.05